| 제목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라 |
날짜 | 2025년 6월 9일 |
| 본문 | 창세기 17장 15-22절(21-22) | 비고 | 새벽 예배 설교 |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본문의 배경설명]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하지만 아브라함은 현실의 불가능함을 보고 웃으며,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은 이삭을 통해 성취될 것임을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용관찰1]
1. 하나님께서는 사래의 이름을 바꾸시며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15-16절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공주)로 바꾸시며, 그녀를 통해 아들을 주시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라에게서 민족과 왕들이 나올 것이라 하시며,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약속을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내용관찰2]
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17절
아브라함은 엎드려 경배하면서도 속으로 웃으며, 백세가 된 자신과 아흔 살 된 사라가 어찌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불가능함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인간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 부분은 연구와 묵상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연구와 묵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웃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17장 17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보인 반응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흔 살이 된 사라를 통해
약속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 엎드리며 웃습니다. 겉으로는 경배하는 듯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나이에 정말 가능할까?’라는 현실적인 의문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조롱이나 불신이라기보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일어난 복합적인 감정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 크고, 자신과 아내의 상태는 너무 연약하고 늦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백세가 되었고, 사라는 이미 생리가 끊어진 상태라는 현실의 무게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인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을 가졌지만,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리지 않으려면 시간과 훈련, 하나님의 계속된 말씀의 반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통해 약속이 이루어지길 원했습니다. 이미 태어난 아들을 통해 현실적인
길이 열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내 언약의 계승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은 인간의 계산이나 대안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의 믿음 크기에 따라 결정되지 않으며,
사람의 조건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반드시 성취된다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다시 약속을 확인시켜 주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견고히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불가능 속에서 일하는 하나님이다. 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보이지 않아도 순종하고,
늦은 것 같아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느낀점]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나이와 상황 앞에서 속으로 웃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 모습은 어쩌면 놀랍다기보다, 우리 자신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며, 이미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언약을 반복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조건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앞세우며 ‘이 일이 가능할까?’ 하고 의심합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다짐하지만, 막상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앞에서는 믿음보다 계산이 앞서고,기도보다 불안이 앞설 때가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연약한 반응을 보며 느낍니다. 믿음이란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선택하는 결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연약한 믿음조차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말씀하시며 기다려주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반응은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초청처럼 느껴집니다.
믿음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 가는 연습의 길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됩니다.
적용. 최근에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했던 적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현실 앞에서는 그 약속이
이루어질 리 없다는 생각이 스쳐간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은 하루분의 만나만 주셨고, 그 이상을 저장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백성들은 혹시나 부족할까 두려워 자기 방식대로 더 거두었다가 썩어버리는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충분하지만,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손으로 만지려 할 때
우리는 오히려 더 혼란을 겪게 됩니다. 믿음이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하루치 만나로도 만족할 줄 아는 태도라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다시 배웁니다.
결단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며 감사와 믿음으로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2가지 정도로 결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1. 하루 한 번, 믿음의 고백을 말씀과 함께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는 고백을 오늘 내 삶에 적용해보고, 말씀 한 구절과 함께 기록하며 믿음의 시선을 지켜가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의 약속을 앞서 판단하지 않고, 그 뜻을 기다리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조급한 결정 앞에서 “하나님이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라는
침묵의 순종을 배우며, 불안 대신 감사로 기다리는 기도의 습관을 세워보는 것이지요.
오늘 하루 이것을 기억하시고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순종하게 하소서.
6월 공동기도제목
1. 교회가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이웃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2. 문화·장학·어린이사역 등을 통해 강동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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