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말씀 앞에서 | 날짜 | 2025년 7월 13일 |
| 본문 | 히브리서 4장 12절 | 비고 | 수요예배 설교 |
[서론]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매주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펼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이런 질문이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말씀은 들리는데, 왜 내 삶은 변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해보셨죠?
우리는 말씀을 들으며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나를 찌르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드물게 느껴집니다.
성경은 말씀을 꿀송이보다 달다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씀은 그저 하나의 성경이야기로만 들립니다.
감동은 있지만 찌름은 없는 상태에 머무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찌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 앞에서 무뎌지고, 굳건한 방어막으로 방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그저 익숙해져 버리것이죠.
말씀을 듣는 데는 익숙하지만
말씀에 반응하는 데에는 둔감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겨볼 본문 히브리서 4장 12절은
그 익숙함과 무감각을 깨우는 매우 강력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말씀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우리를 꿰뚫고 드러내어 회복으로 이끄는 영적인 수술도구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이 찌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그 말씀 앞에 함께 엎드리고 깨닫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헬라어 ‘ζῶν’(존),
“활력이 있다”는 ‘ἐνεργής’(에네르게스)입니다.
이 단어들의 헬라어의 원 뜻이 재미있어요.
단지 살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능동적으로 역사하고,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숨 쉬고 움직이며,
지금도 내 마음을 향하고 있는 하나님의 칼날인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칼날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검이라고 하니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시대 당시 이 서신을 받았던 성도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이것은 로마 병사들이 평소에 차고 다니던 검입니다.
이름은 글라디우스입니다. 중세 영화에서 보신것처럼 두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검이
아니라 단검입니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정확히 찔러 치명상을 입히는 무기죠.
이것을 본문을 통해 그려보십시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자존심, 위선, 상처, 교만을 정밀하게 찔러 쪼갭니다.
그리고 기자는 이어 말합니다.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이 표현은 단순한 해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분간할 수 없는 가장 깊은 내면까지 말씀은 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은 내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과 중심 동기를 다루십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말씀 앞에서 그런 경험이 있으셨습니까?
설교 한 문장이 가슴을 찌르고,
묵상 중 한 구절이 내 죄를 정면으로 비출 때,
그 순간 우리는 방어하고 싶어집니다. 내 내면의 추한 모습을 보며 외면하고 싶죠.
“지금은 아니야”, “다른 사람 얘기야.”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은 회피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찔림이 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죽이기 위해 찌르지 않습니다. 살리기 위해 찌르십니다.
수술실의 날카로운 메스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피부를 찌릅니다.
이처럼 말씀은 죄를 드러내지만, 정죄가 아니라 회개로 이끌며,
우리의 삶을 해체함으로써 다시 세우려는 영적인 수술도구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진짜 회복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바로 말씀에 찔렸을때가 아닙니까?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 한 마디가 내 방어를 무너뜨리고, 위선을 걷어내고,
진짜 복음 앞에 엎드리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많은 이들이 말씀을 듣지만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감동은 추구하지만 결단은 외면하고,
말씀을 정보로 소비하지만, 영혼을 깨우치는 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찔러야 삽니다. 쪼개져야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세우기 위해 해체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찌르고 있다면, 도망치지 마십시오.
그 찔림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 자리가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말씀 앞에 반응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2] 말씀은 우리의 중심을 판단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 후반부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은 단지 우리를 찌르고 쪼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찔림 이후, 말씀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판단하십니다.
여기서 ‘판단한다’는 말은 헬라어 ‘κριτικός’(크리티코스),
즉 예리하게 분별하고 판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단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속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옳고 그름을 식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나의 행동 너머의 동기와 의도,
감정의 흐름과 사고의 방향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판단하십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 외면을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도 주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말씀은 바로 그 중심을 겨누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어.” “나는 진심으로 섬기고 있어.”
그러나 말씀은 묻습니다.
“그 섬김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씀 앞에서 절대로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도 속이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좋은 의도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들이 있죠.
겉으로는 믿음처럼 보였지만, 속에는 계산과 자기 보호가 있었던 것을
남들은 모르지만 스스로는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자기기만의 민낯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 판단 앞에 서는 일은 불편합니다.
어떤 땐 부끄럽고, 고개를 들 수 없게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불편함이 바로 회복의 출발점인줄 믿습니다.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말씀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판단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해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여인과 많은 죄인들에게 진리를 말씀하시며
정확히 그들의 중심을 찔러내셨지만, 결코 정죄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의 판단은 “너는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초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앞에서 감탄만 하고 돌아서지 말고,
그 판단 앞에 내 동기를, 내 의도를, 내 진심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해
더 정결한 그릇, 더 준비된 사람으로 우리를 다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판단을 피하지 마십시오.
그 분별은 새로운 회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혹시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깨달으시고 마음이 열리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제가 설교를 멋들어지게 잘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며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듣는 지금 이 시간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을 열고 계시기 때문에 깨달아지는 것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 앞에 진심으로 서십시오.
저기 깊은 마음속 감춰둔 동기까지 내어놓고,
“주님, 말씀으로 제 중심을 다루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자리에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지금도 우리의 중심을 향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단지 감동을 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중심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때때로 그 찔림은 아프지만,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를 다루고 계신다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 말씀 앞에 피하지 말고, 엎드리십시오.
감동이 아닌 반응, 습관이 아닌 회개, 겉모습이 아닌 중심을 드리십시오.
말씀 앞에 엎드리는 자는 반드시 다시 세워질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 앞에,
우리 모두가 다시 서는 은혜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다시 서는 은혜의 자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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