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된다, 로마서 10장 17절, 20250723

하엘빠 2025. 9. 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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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3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된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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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된다 날짜 2025723
본문 로마서 1017 비고 수요예배 설교

 

[서론]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나는 말씀을 듣고 있는데도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

 

저 역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말씀을 많이 들으면 믿음도 생기고, 기도를 오래 하면 뜨거운 감정이

곧 믿음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설교를 듣고도 아무 변화 없이 돌아서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죠. 말씀을 듣고도 가슴이 뛰지 않고,

기도를 해도 마음이 막힌 듯한 경험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늘 본문인 로마서 1017절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단지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서 시작되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말해주는 성경의 중요한 중심 진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1. 믿음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말씀을 통해 시작됩니다.

2. 그 말씀이 믿음을 낳으려면, 말씀을 듣는 자의 심령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이 말씀 앞에서, “나는 지금 정말 복음을 듣고 있는가?”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첫째로 우리는 종종 믿음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믿으십시오"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정작 믿음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배나 기도 중에 뜨거운 감정을 경험하면 그것이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감정이 믿음의 본질이 아님을 분명히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철저히 외부에서 오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복음의 말씀이 우리 안에 심겨질 때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0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구절은 단순한 설명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향해 스스로 반응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까지 모두 죄로 인해 왜곡되었죠.

그러니 어찌 우리 안에서 믿음이 스스로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은 반드시 외부에서 들려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만이 죽은 심령을 깨우고, 믿음을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들음’, 헬라어 κοή(akoē)

단순히 청각적으로 듣는것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영적인 행동을 포함하지요.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단순히 말씀을 들었다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죠. ‘말씀이 내 안에 임했고 살아 움직인다라고 말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고, 성령의 역사로 그 말씀에 반응할 때,

비로소 참된 믿음이 생기며, 그 믿음은 다시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앞선 로마서 1014에서도 그 구조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믿음은 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복음의 선포라는 객관적인 사건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설교가 아무리 유창해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다면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고, 신앙은 공허한 외형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단지 들음이 아니라, 앞선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강조합니다.

 

헬라어 ῥῆμα Χριστοῦ(rhēma Christou)

이 말은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여러가지 정보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속사적 선포, 십자가와 부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믿음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때때로 설교자가 하는 삶의 팁, 위로의 말,

도덕적 교훈으로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믿음의 시작점이요 끝점이 됩니다.

히브리서 4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복음이 들릴 때 죽었던 심령이 살아납니다.

냉담했던 마음이 녹고, 무기력했던 믿음이 다시 회복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이 선포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죠.

 

그리고 믿음은 외부에서 시작될 뿐 아니라, 외부에서 계속 공급되어야만 유지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듣는 자리에 빠지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언제나 예배를 사모하며 말씀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2]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선포됩니다.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말씀 앞에서 같은 반응을 보이진 않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지만,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변화 없이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 차이는 말씀을 듣는 자의 심령,

얼마나 갈급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단비를 기다립니다.

논밭이 갈라지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을 때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비를 애타게 구하죠.

 

그런데 정작 내 영혼이 메마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가뭄이 찾아왔을 때는

왜 우리는 그토록 간절하지 않을까요?

 

말씀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가,

복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그것이 믿음의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하지만 심령이 메말라 있다면, 아무리 좋은 씨앗도 자라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능력이지만, 그 능력을 받아들일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참된 사모함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느헤미야 8장을 보십시오.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하자, 백성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꼿꼿이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율법을 들은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자리에서 울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말씀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은 익숙한 종교 언어가 아니라,

오랜 침묵 끝에 다시 들려오는 하나님의 생명의 음성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는,

복음을 모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익숙해져서 사모함과 감동이 사라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듣지만,

그 말씀이 내 영혼을 흔들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 안에 있는 복음에 대한 사모함이 식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 상태에서는 아무리 탁월한 설교가 들려도,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말씀을 사모하게 하소서.

복음을 생명처럼 갈망하는 마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오늘도 제게 말씀하소서. 그 말씀이 저를 살리게 하소서.”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갈급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복음을 사모하는 자의 심령에, 하나님은 반드시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듣는 자에게,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그 말씀은 반드시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 복음을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다시 믿음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런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엎드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듣고도 변화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지금, 복음을 어떻게 듣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믿음은 감정이나 결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을 들을 때 시작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복음은 오늘도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말씀이 믿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복음을 귀하게 여기는 심령 위에만 믿음이 자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복음을 어떻게 듣고 있는가?”

그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 아니면 흘려보내고 있는가?”

 

복음은 들릴 때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복음을 복음으로 받으십시오.

그때 여러분 안에 다시 믿음이 살아날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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