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보이지 않아도 믿습니다 | 날짜 | 2025년 8월 20일 |
| 본문 | 하박국 2장 3-4절 | 비고 | 수요예배설교 |
[서론]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은 시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떤 음식을 시킬 때 전화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주문을 하죠.
하지만 예전을 생각해볼까요? 직접 가게에 전화를 해서 주문을 합니다.
40분이 지나도 배달이 오지 않으면 다시 전화를 걸어서 묻죠.
“여기 어디어디인데요. 언제 배달이 되나요?” 그러면 사장님이 말하죠.
“아 거기 5분전에 출발했습니다”
출발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계속 늦어지니 의심이 생깁니다.
“정말 출발한걸까? 진짜 배달이 오고 있는 걸까?”
이런 적 있으셔요? 없으셔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고, 세상은 여전히 불의하고,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을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하나님, 지금도 일하고 계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이해하려면,
당시 배경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박국서는 하나님과 선지자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이 질문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구조죠.
당시 남유다는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무너져가고 있었기에
하박국은 하나님께 거침없이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악인이 형통합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이 질문에 하나님은 하박국에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더 악한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겠다.”
대답을 듣고 혼란에 빠진 하박국에게
하나님이 주신 결정적인 한 마디가 오늘 4절 말씀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단순한 격려가 아닙니다.
현실을 믿음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이제 본문을 통해 그 깊은 뜻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본론 1 ]
하박국이 들은 하나님의 응답 중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는 말씀은 2장 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시간 예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지요.
“지금 보이지 않아도, 지금 느껴지지 않아도, 나의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그저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말씀의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선언이며
분명한 약속의 선포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됩니까?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너무 느리게 일하신다고 느낍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도, 정의의 실현도, 회복의 역사도 지체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말씀을 붙드는 자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되지 않다는 확신에서 오는 담대함인 것이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25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 동안 아브라함은 여러 번 흔들렸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그 평가가 로마서 4장 20절에 나와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시간을 견디는 힘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낳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당장의 멸망을 피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멸망이 올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 가운데서도 “기다리라”고 명하십니다.
이처럼 믿음은 결과가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확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기준으로 미래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다림은 우리에게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겠지요?
오히려 기다림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굳건한 신앙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과 인내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더욱 강하게 빚어 가십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말씀을 더 굳게 붙들며,
현실이 어두울수록 말씀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딸들아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자는 오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미래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지 “믿음으로 사는 자는 소망한다”로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믿음이 왜 중요한지를 교만한 자와의 대조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박국 2장 4절을 통해 그 믿음의 본질을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2]
하박국 2장 4절은 한 절 안에 두 종류의 사람을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먼저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라고 말할 때,
여기서 “그”는 문맥상 바벨론, 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어떤 존재들입니까?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며, 자신들의 힘과 전략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멋지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과 번영을 누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들여다보시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먼저 교만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팔이라는 단어인데
크게 부풀다, 스스로 높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쉽게 보면 자신의 힘만 의지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어 “정직하지 못하다.” 고 말씀하시지요?
원어의 뜻은 ‘구부러졌다’, ‘일그러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겉은 멀쩡해 보여도, 내면은 진실하지 않고 비뚤어진 상태라는 것이죠.
그 마음은 교만으로 부풀어 올랐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조금 익숙하시지요??
이것은 단지 고대 바벨론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판단, 경험을 더 신뢰하며,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시대가 오늘날의 시대 아닙니까?
기도는 하지만, 실상은 자기 계획을 붙들고,
예배는 드리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우선되는 삶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런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겉으로 강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실줄 믿습니다.
스스로 높아진 자는 반드시 낮아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춘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 반대되는 사람을 소개하시지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한 구절은 하박국서의 중심이자,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구원의 선언 중 하나입니다.
이신칭의의 중요한 말씀이지요.
로마서 1:17, 갈라디아서 3:11, 히브리서 10:38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근거로 삼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히브리 단어의 원 뜻은 단순한 ‘신념’이나 ‘열정’이 아니라,
신실함, 충성스러움, 확고함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태도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란 단지 한순간의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상태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붙드는 태도,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 삶의 자세
이것이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하나님께 거침없이 질문하죠.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왜 악인을 통해 심판하십니까?”
그의 질문은 절망이나 불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시며,
정의로우신 분이라는 확신을 가진 후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자를 “의인”이라 부르시며
그는 “살리라”고 선언하시지요.
이 ‘살리라’는 말은 단지 생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누리는 생명,
곧 구원, 회복,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존재입니다.
즉, 믿음으로 사는 자는
현실이 무너져도 살아 있는 자입니다.
외적으로는 흔들려 보여도,
내면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자입니다.
하박국이 이런 혼란의 시대 속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이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죠.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초대입니다.
오늘 우리도 묻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악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지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자는 세상과 달리, 하나님을 기준 삼아 살아갑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실하게 하나님을 붙드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기도 응답은 더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분의 성실하심을 신뢰하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자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 믿음이 다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말씀을 붙들고,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김민기 목사 설교 > 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혼의 닻을 그리스도께. 20250921 (1) | 2025.12.19 |
|---|---|
| 진토에서 시작되는 회복, 시편 119편 25절, 20250910 (1) | 2025.09.16 |
| 하늘에 닿는 무릎, 다니엘 6장 10절, 20250810 (1) | 2025.09.16 |
|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된다, 로마서 10장 17절, 20250723 (0) | 2025.09.16 |
| 말씀 앞에서, 히브리서 4장 12절, 20250713 (0) | 2025.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