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본문의 배경설명]
오늘 본문의 배경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 선포 장면입니다. 바벨론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의 영광과 쾌락을 스스로 추구하는
세속 체계와 교만한 인간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그 성의 죄악이 하늘에 닿았다고 선언하시며, 그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리십니다. 또한 성도들에게 “그 성에서 나오라” 명하심으로, 세상의 교만과 자기
영화의 죄에 동참하지 말고 거룩한 삶으로 구별되라는 경고와 권면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내용관찰1]
선장과 선객들, 선원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어떻게 여깁니까? 19절
선장과 선객들, 선원들은 큰 성 바벨론이 한순간에 불타 무너진 것을 보고
통곡하며 슬퍼합니다. 그들은 재를 머리에 뿌리고 울부짖으며, 자신들의
부와 거래의 중심이었던 바벨론이 사라졌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들의 슬픔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애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영광이 함께 사라진 데 대한 세속적 슬픔이었습니다.
[내용관찰2]
2.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자들은 누구입니까? 20절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자들은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단순한 파괴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의롭게 심판하신 공의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즉, 악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는 그 순간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와 사도, 선지자들입니다.
연구와 묵상에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연구와 묵상. 하나님께서는 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 선지자들에게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분의 공의와 진리가 마침내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세상 권세와 부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백성을 핍박하며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성도들은 그 불의한
세상 속에서 고통받고, 의로운 삶을 지키려 애썼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정의가 왜 더디게 이루어지는지 답답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셨고, 때가 이르자 악을 심판하시고 의를 회복하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이 심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와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이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일을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불의한
자가 잠시 번성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결국 의인과 악인을 분명히 구별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억누른 악을 반드시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기쁨은 단순히 악의 멸망을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데 대한 경외와 감사의 찬양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즐거워하라”고 하신 것은, 세상의 성공이나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세워질 때 진정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낀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공의와 진리가 드러나는 심판 장면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공의와 진리가 드러나는 심판의 장면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참된 기쁨은 세상의 성공이나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세상에서는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거짓이 진리를 가리는 순간이
많지만, 하나님은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십니다. 그때 의인들의 눈물과 억울함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세워집니다. 그날의 기쁨은 단순히 악인의 멸망을 보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진리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보는 거룩한 기쁨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지금 눈앞의 불의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며,
결국 공의와 진리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불의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따르는 삶이 결국 가장 복된
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적용. 내가 헛된 부요와 안정감을 추구하며 바벨론의 유혹에 사로잡힌 적은 언제입니까?
우리의 마음은 종종 눈에 보이는 부요함과 안정감을 추구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기준을 더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바벨론의
유혹임을 말씀은 경고합니다.
성경 속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그는 풍년이 들어 곡식이 넘치자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거기에 내
모든 소유를 쌓아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밤에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재물과 안락함 안에서 안전을 찾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문제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만족할 수 있다고 착각한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저 역시 돌아보면,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기도와 말씀에 대한 열심이 식고,
내 힘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시 부족함과 흔들림의 시간을 통해 참된 안정은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부요함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며, 재물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진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세상이 주는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는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한 결단으로 나가야 합니다.
결단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드러나는 날을
기대하며 살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결단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드러나는 날을 바라보며 살기 위해 오늘의 삶을 말씀의 기준으로 점검하는 것을 실천보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의 선택 앞에서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가?’를 스스로 물으며, 세상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 하는 것이지요.
또한 작은 일에도 정직과 공의를 지키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거짓이나 타협 대신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이지요.
세상의 풍요와 편안함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의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오늘의 삶 가운데 이것을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진리를 붙들며 진리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2. 세상의 헛된 부요함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끝까지 붙들며
살아가게 하소서
공동기도제목
전도 대상자를 품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어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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