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으로 일으키시는 생명 | 날짜 | 2024년 11월 6일 |
본문 | 에스겔 37장 4-6절 | 비고 | 수요예배설교 |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과학과 기술, 경제등 여러분야에서 전례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시는것처럼 인공지능 AI가 발달되며 혁신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지만 이제는 AI를 통한 비서나 자율주행등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세상이 발달하는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깊은 곳에서는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목마르고,
점점 더 깊은 메마름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더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만족과 평안은 사라지고, 오히려 더 큰 피로와 번아웃이 찾아옵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사역하고 섬기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생명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사막을 걷는 것처럼 메마르고 갈증이 가득하죠.
혹시 여러분도 이런 영적 메마름을 경험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은데, 무언가가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말씀을 읽고 기도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생명이 솟아오르지 않는 답답함,
바로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영적 메마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에스겔 37장은 이러한 영적 메마름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혹시나 여러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반드시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3가지로 정리해볼까합니다.
첫째는 절망의 현실을 살펴볼까 합니다. 즉 마른 뼈같은 영적 상태를 살펴보는것이지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나누고
마지막 셋째는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누려고 합니다.
간절함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살펴보며 말씀으로 회복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절망의 현실을 바라보기
회복의 말씀을 먼저 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상황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즉 마른 뼈들의 상태, 절망의 현실에 대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매우 극적인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에스겔 37장은 바벨론 포로기에 처한 백성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배경으로 합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것처럼 보이죠.
약속의 땅에서 쫓겨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상처와 비참, 버림받은 것은 아닌가? 라는 두려움,
그리고 완전히 말라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을 잃어버렸죠.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성전도 불타버렸고, 주권도 잃어버렸습니다.
고대근동에서 땅과 삶의 핵심이었던 성전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졌다는것과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가십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하나님은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가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골짜기는 깊은 절망과 죽음의 상징입니다.
전쟁터나 재난이 닥친곳을 흔히 “죽음의 골짜기”라고 말합니다. 회복 불가능한것이죠.
골짜기에 가득한 뼈들은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그 의미처럼 에스겔이 서 있는 골짜기에 마른 뼈로 완전히 가득차 있습니다.
그렇다면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는 어떤 상태에 있는걸까요?
2절을 다시 함께 읽어볼까요?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이 마른 뼈들은 오랫동안 방치되고, 생명이 끊어진 상태를 나타냅니다.
2절에서 말하는 말랐다는 히브리 원어는 “야바쉬”입니다.
이것은 물기가 하나 없이 완전히 메마른 상태인데
이것은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뼈들이 햇빛에 아주 오랫동안 노출되어 수분이
다 말라버린 상태, 더 이상 어떤 기대와 희망도 남아있지 않는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포로 생활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이미 죽음을 넘어 영적으로
완전히 말라버린 상태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의 번잡한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영적으로 메마르고, 죽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영적 기쁨과 활력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우리의 영혼도 이처럼 말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런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멀어지니 어떻게 됩니까?
마치 나뭇가지가 줄기에서 분리되면 시들어가듯이 우리의 영혼도 이러합니다.
처음엔 살아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메말라 갑니다.
다른 것으로 채워봐도 해결되지 않아 또 다시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목마름, 갈증은 더 심해지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죠,
“가슴속에는 하나님밖에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진지하게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고요함 가운데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가보십시오.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점검해보시고
스스로의 영적 갈증의 원인을 하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메마름, 영적인 갈급함이 있습니까?
이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갈망과 허전함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영적 메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우리의 영혼의 갈증과 갈급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울 수 있는줄 믿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라
오늘 본문에서 마른 뼈들은 말씀을 통해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죽음의 골짜기가 생명의 골짜기로 바뀝니다.
우리의 삶도 말씀의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말씀 한 마디가 우리 영혼의 공허함을 채우고 메마름을 소생케 합니다.
말씀은 단순히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근본적으로 살리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이런 영적인 메마름은 앞서 잠시 살펴본것처럼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이 마른 뼈들로 가득한 골짜기를 바라보았을 때,
인간적인 눈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임하자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어 큰 군대로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절망에 있을 때에도 소망을 불어넣고,
메마른 심령을 소생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죽음가운데 던져신 하나님의 생명의 명령이었고, 이때부터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되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3절에서 하나님의 질문에 에스겔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죠.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방법이 바로 희망입니다.
마른 뼈들로 가득찬 그곳에서 에스겔에게 특별한 명령을 주십니다.
이 명령은 에스겔 자신의 지혜나 능력으로 마른 뼈들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의존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 에스겔은 말씀이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곧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와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곳곳에서 이와 같은 말씀의 창조적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는 장면을 기억하십니ᄁᆞ?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빛이 생겨났고 생명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며,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담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때 생명이 들어온 것처럼,
예수님도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하셨을 때 죽은 자가 생명을 얻어 걸어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시며
모든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을 주실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메마른 심령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통해 죄와 절망에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 가운데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을 살리는 것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묵상하며 곱씹을 때 우리의 영혼은 새롭게 소생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늘날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계십니까?
그저 습관처럼, 형식주의처럼 말씀을 대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장이 뛰지 않는 몸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그 안은 이미 생명을 잃은 상태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할 영혼이 점점 마르고 시들어가는 상태와 같습니다.
깊은 갈증 속에서도 물을 거부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떠나면 반드시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삶의 근원을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에 제일가는 보물로 삼으십시오.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새롭게 되고, 메마른 영혼이 다시 소생케 됩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난 것은 에스겔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선포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처럼 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세 번째,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합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우리의 상황은 말씀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메마른 뼈들로 가득찬 골짜기에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함께 읽은 10절을 보면 “생기”라는 단어가 있죠.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양한 부분에서 바람, 숨, 영으로 사용이 됩니다.
문맥에 따라서 육체와 영적인 생명력, 하나님의 성령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생명력을 전달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지요.
이는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느니라”고 할 때 사용되는 하나님의 영이
바로 루아흐입니다. 즉 질서를 창조하고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창조의 원동력으로 묘사되지요.
그러니 지금 에스겔 37장 본문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잇을까요?
10절에서 생기가 들어가니 곧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됩니다. 즉 마른 뼈들에 들어가 생명력 있는 존재로 부활시키는 핵심이 되지요.
이전까지는 어떻습니까?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살과 피부가 덮였지만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있습니다. 아직 그 가운데 생기는 없습니다.
즉 아직 생명이 없다는 말이지요.
형식적으로는 완전한 모습이 갖춰졌지만 생명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영혼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없이는 우리가 살아있지만 진정으로 살아숨쉬는 것이 아닙니다.
몇 십년 종교활동하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기가 없는 신앙은
겉모습만 있는 마른뼈와 같은 죽은 상태와 같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많이 죽어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성경읽고, 봉사합니다. 외적으로 보여질 때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말씀의 부재, 성령의 임재가
없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가 내 영혼을 깊이 채우지 못할때가 있지 않습니까?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단순히 예배의 한 부분으로 느끼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기가 없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은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무기력과 메마름만을 남기죠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기쁨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껍데기와 같은 신앙인이 되는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뼈들로 가득찬 골짜기, 그리고 뼈와 살이 있지만 생기가 없는 모습들은
이처럼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지식의 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만을 기록한것도 아닙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묵상하며 곱씹을 때, 이 말씀은 우리안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더 쉽게 말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새롭게 살아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실제적인 예화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이이 이제 새로운 직장에 취업에 성공했다고 칩시다.
그때 사장님이 오셔서 큰 매뉴얼을 하나 여러분들에게 전달합니다.
약 3천페이지 가량 되는 아주 두꺼운 회사생활에 대한 매뉴얼입니다.
그 매뉴얼을 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숙지하고 회사생활을 이어나간다면
연봉을 현재 3천에서 1억으로 올려준다고 분명하게 약속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회사매뉴얼을 제대로 정독하고 숙지하시겠습니까? 안하시겠습니까?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매뉴얼을 숙지한다고 말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한낱 회사의 매뉴얼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충만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충만이란 단순하게 뜨거운 열정이나 사람의 감정적인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중에 A.W. 토저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쓰신 마이트 시리즈 책중에서 “성령님” “이것이 성령님이다” “보혜사” 책을 보면
성령 충만의 정의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과의 깊은 동행속에서 이루어지는 온전한 내적인 변화이며
삶의 모든 부분에서 모든 것을 성령님께 완전히 맡기는 삶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을 가득 채우십시오.
살아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될 때 본문에서 말하는 생기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이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때로는 마른 뼈와 같습니다. 말라버린 뼈들처럼 소망이 끊어진것만 같은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깊은 심령까지도 통달하시며,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십니다.
만약 여러분들 가운데 이런 영적인 메마름에 빠져 계신분이 있다면
이런 부분들을 하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그저 겉모습만을 지닌 타성에 젖어 있는 신앙인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찬! 살아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신앙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골짜기의 마른뼈들이 일어났듯.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생명이 있으라”고 선포하시고 “일어나라”고 선포하십니다.
마른 뼈가 힘줄이 붙고 살이 붙고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가 되어 일어났던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영혼에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때로는 삶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하더라도
생명이신 그분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런 주님을 말씀을 성령을 의지하며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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