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사사기 17장 6절,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

하엘빠 2024. 11. 2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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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
날짜 20241120
본문 사사기 176 비고 수요예배설교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죠.

하지만 그 분주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내 삶의 중심에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건가?”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솔직해져 봅시다.

때로는 내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진 않았나요?

 

예를 들어 나와 내 가정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제야 다급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리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을 찾는 일에 소홀해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찾는 '만능 자판기'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이자 왕이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사기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사기의 이야기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문제나 실패가 아닙니다.

이들의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이며 조국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에 익숙해지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깁니다.

그 결과로 심판을 당하고, 이방 나라들에 압제를 당했을 때 다시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패턴이 반복되는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영적 문제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사사기 1장에서 16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각 사사들이 그들을 구원하는 사건들이 시간 순서대로 기록된 부분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17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별도로 삽입된 이야기로,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사사 옷니엘부터 마지막 사사 삼손에 이르기까지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됩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더 악화됩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나선형 하강구조라고 부르죠.

 

사랑하는 여러분

죄라는 것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작은것부터 시작하여 갈수록 커져갑니다.

마치 눈덩이와 같이 처음에는 작은 눈덩이를 굴렸지만 비탈길을 따라 가면서

나중에는 산처럼 커져버리는 겁니다.

 

오늘 17장을 보니 한 사람의 우상숭배가 한가정으로 번졌고,

그 가정부터 시작된 우상숭배가 한 지파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지파의 범죄가 더욱 퍼져 모든 지파가 범죄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내용들을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단지 백성들과 우리들의 실패담을 지적하며 정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끝없는 타락속에서도 우리를 회복시키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사사이자,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소망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왕이 없는 삶은 어떠한가?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왕이신가?를 살펴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커에 빨간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온 물이 붉게 물듭니다.

오늘 본문도 그와 같습니다.

 

17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미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돈을 훔쳤나봅니다.

그러니 돈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굉장히 흥분해서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어머니의 저주를 들은 미가가 놀라 훔쳤던 은을 다시 어머니께 돌려줍니다.

그리고는 2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당시 가나안 신앙에서는 저주를 걸고 푸는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걸었기에, 복을 빌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알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여기면 안됩니다.

누구를 축복하거나 저주할 때 우리는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아서는 안됩니다.

지금보니 미가의 어머니도 바알 신앙에 물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인공은 미가입니다. 미가의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냐?”

이 의미는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지니는 의미이지요.

 

지금 그 이름은 누가 그에게 지어준것입니까? 그의 부모가 지어준것이지요.

그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의미하는 이름을 지어 미가에게 붙여주었지만

그와 다르게 바알신앙과 혼합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당시 시대의 혼탁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미가에게 돈을 받고 이렇게 행동합니다.

3절을 함께 읽습니다.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미가가 훔쳤던 돈으로 신상을 만듭니다. 어머니는 여호와를 위해 바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들을 위해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기 위해서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십계명에서 2계명을 보면 그 어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상을 만들죠.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죠. 3계를 어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마치 신처럼 여깁니다. 1계를 어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지만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범죄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여러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부동산 투기나, 주식으로 대박나게 해주시면 10프로를 헌금하겠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겠다고 약속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복 받는 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안됩니다.

 

미가나 미가의 어머니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내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됨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잘 배우고 잘 알아야 합니다.

내 기준으로 내 생각대로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섬겨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떠돌이 레위인, 정확하게 말하면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은 할당 받은 땅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48성읍을 받았습니다.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의 땅으로서 그들이 거주하거나 정착할 성읍으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원래 성읍이 아닌곳에서 방황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레위인이 이렇게 방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영적 혼란과 무질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튼 미가는 떠돌이 레위인을 자신의 집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10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미가는 레위인에게 자신을 위해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달라며 연봉을 제안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닌 자신을 위해 제사장을 고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제사장은 누구의 계열만 가능합니까?

아론 계열만 특별히 제사장 직분을 맡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론의 계열은 제사장직을 담당하는 특별한 지위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소갤할 때 반드시 아론 계열이라고 밝힙니다.

 

하지만 지금 이 레위인은 아니예요.

단순히 레위인으로만 설명하고 있기에,

아론 계열이 아닌 성막에서 제사를 돕는 레위인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니 이 레위인은 제사장 자격이 없었지만,

미가의 제안에 응해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무시합니다.

 

이어서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사랑하는 여려분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보다는 외형적인 종교 행위에 집착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배는 드리지만,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습도 미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외형적인 신앙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미가처럼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신앙이 외적인 행위가 아닌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외형적인 행위만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미가처럼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미가는 왜 이럴까요? 6절이 그 답을 말해주고 있지요.

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6절은 사사기의 핵심구절이자 사사기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누가 없다고 말하죠? 왕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직 이때는 왕정시대가 아닙니다. 사사시대입니다.

6절을 깊이 묵상해보면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에 현재 통치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사기의 배경은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친 후

여호수아가 죽고 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과 같이 자신들을 다스릴 왕이 없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더 리얼하게 표현하자면 모두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로 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더 중요합니다.

구약 파노라마를 들으셨던 분들은 여호수아서의 핵심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이 4가지입니다.

 

건너라! 취하라! 나누라! 섬기라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라! 정복전쟁을 통해 약속의 땅을 취하라!

그 약속의 땅을 지파별로 균등하게 나누라!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에 백성들은 마지막 명령을 지키지 않습니다. 섬기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여호수아처럼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신명기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실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한 지침을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은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과 때에 세워져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왕이 없던 이 시기에

자신들의 마음대로 살기보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 기다리며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합니다.

진정한 왕이 세워지기전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대신에

죄와 타락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18장을 보면 이 죄악이 점점 더 커집니다. 미가의 집에서 시작된 죄가 한 지파로 확산되죠.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단 피자의 정탐꾼들은 정복전쟁을 위해 길을 가다 미가의 집에 유숙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에 있는 에봇과 우상을 봅니다. 그들은 미가와 제사장을 책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가짜 제사장에게 전쟁의 승리를 점쳐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단 지파가 다시 그 집을 방문했을때는

그 집의 신상과 에봇, 드라빔, 부어만든 신상을 훔쳐갑니다.

그것도 모잘라 아론 계열의 레위인이 아닌 그 가짜 제사장을 데려갑니다.

 

한 집의 제사장이 될래? 아니면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될래?”

그 청년은 기뻐하며 받아들입니다.

소위 말해 개척교회의 담임이 될래? 대형교회의 담임이 될래?와 같습니다.

결국 단 지파는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을 가져갑니다.

한 사람의 죄가 한 지파 전체로 확산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죄가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키는지 살펴봤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타락이 시작이 되었던 것일까요?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통해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고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사기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백성들이 이토록 죄악을 저지르니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사사를 세우시기 시작합니다.

12명의 사사중 첫 번째 사사가 옷니엘이지요.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로서 완벽한 모습을 지난 사사입니다. FM이예요.

그런데 이 옷니엘이 세워지기 전의 백성들의 상황을 보면

오늘 함께 살펴본 17장에서의 타락들의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성경은 또 말합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잊습니다.

백성들의 타락의 시작은 이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인인 하나님을 잊은것입니다.

가장 작아보이지만 가장 큰 죄악의 출발입니다.

 

여기서 잊어버리다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잊어버리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카흐입니다.

이것의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단순히 그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원어의 의미는 잘못 놓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지켜주신 하나님을 완전히 100프로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바알을 섬기면서 함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가나안의 많은 우상들을 섬기며 동시에 함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을 잘못 놓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마땅히 계셔야 할 자리에 놓지 않고,

대신 바알과 같은 이방의 우상들을 그들의 중심에 놓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돈이, 때로는 자녀가, 때로는 나의 만족과 유익과 쾌락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필요할때만, 힘들고 어려울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까?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기에서 한 수 잘못 두면 패배하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아 타락했습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범죄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이 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커지게 되며, 삼손이 태어날 시기에는

아예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지도 않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영적 암흑기라 말하는 사사기의 현재 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사사기의 어두운 면을 살펴봤습니다.

어디서부터 죄가 출발 되었는지, 한 사람의 범죄가 어떻게 번지게 되었는지 살펴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절망으로 끝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보다 더 크신 은혜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계획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움을 통해 공동체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이 한 사람은 미가가 아니라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입니다.

아담이나 미가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분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빠졌고,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가정과 모든 지파가 범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완전한 순종과 희생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가 더 확산되지 못하도록 막는 거룩한 방패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왕이 되시며, 제사장이 되시며 사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오늘날 나도, 우리도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버리고,

그 자리에 세상의 가치나 내 욕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잘못된 위치에 두면, 죄는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해 점점 커지고

결국 나와 내 가정, 우리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런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하십시오.

 

예수님만이 나의 진정한 왕이자 사사가 되실 때

우리는 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은 어떤 삶이겠습니까?

 

우리 개개인적으로 본다면

그저 단순히 명목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단순히 교회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만 있고

내용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결단과 실천들이 있어야 합니다.

 

더불러 교회적으로 본다면 그저 교회라는 이름만 붙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참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개인들과 교회가 이렇게 되야 합니다.

내 욕망이나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시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다름 아닌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붙드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41120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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