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우리는 지금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는 불안정하고, 전쟁과 재난의 소식은 매일 들려오고,
정치는 혼란스럽고,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겉으로는 모두가 다 괜찮은 척하지만,
내면은 이미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죠.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있지만,
정작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말하기 어려운 고단함과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짐들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기도는 예전만큼 안되고,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고,
그저 버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것 같죠.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 시대, 유다 백성들도 똑같았습니다.
국가는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바벨론의 그림자가 예루살렘을 덮었죠.
민심은 공포로 가득했고, 왕과 관리들은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성전은 있고 제사도 드렸습니다만
그들의 뿌리는 하나님께 내려 있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앞의 나라들을, 보이는 힘을, 보이는 동맹을 더 붙잡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두 길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 길" 이것은 저주의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길“ 이것은 복의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복된 길을 걷는 사람을 한 그루 나무에 비유하십니다.
그게 바로 8절입니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더위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 가뭄이 와도 청청한 삶,
위기 속에서도 열매 맺는 삶, 이것이 진짜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느냐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내 능력입니까? 통장 잔고입니까? 환경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기도가 막혀있고, 영혼이 메마르며
힘이 빠져 하루하루를 버티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을 다시 물가로 옮겨 심고,
여러분의 영혼을 다시 소생시키실 줄 믿습니다.
이제 본문이 말하는 복된 삶의 실제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본론 1]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7-8절은 앞선 5-6절과 이어져 있습니다.
5-6절에서는 사람을 의지하는 자를 "저주 받은 자"로,
7-8절에서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복 있는 자"로 보여줍니다.
길은 하나인데,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가 다른 것이지요.
겉으로 보면 똑같이 살아가고, 똑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뿌리를 내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뿌리를 내립니다.
우리 현실도 그렇죠?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실제로 내 삶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통장 잔고,
사람들의 인정, 사람들의 평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
하나님께 기대는 것을 본문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죠.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이 있다.“
"의지한다"는 말, 히브리어로 바타흐(batach)입니다.
이 단어는 머리로 동의하는 믿음이 아니라 이것은 몸을 기대는 신뢰입니다.
우리가 너무 지쳐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면 어디든 기대고 싶어집니다.
벽에 기대거나, 의자에 털썩 앉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이게 기대는 것이죠
자기 힘을 내려놓고, 자기 판단에 매달리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께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일때가 많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도보다 먼저 현실적인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해결하지?, 누구한테 전화하지?…"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야 "아, 기도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여기 "의뢰하는"이란 단어는 "신뢰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그 대상, 나를 떠받쳐 줄 수 있는 그 토대"라는 뜻입니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이는 이유는, 믿고 의지하는 삶에는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의뢰)과 그 대상에게 실제로 기대는 행동(의지)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튼튼한 의자가 있어도 내가 실제로 앉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에게 실제로 나를 맡길 때
비로소 진짜 믿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면 그 사람이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집니다.
돈에 뿌리를 두면 경제가 흔들릴 때 내가 무너집니다.
자녀에게 뿌리를 두면 자녀가 내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내 삶 전체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뿌리를 둔 사람은, 환경은 흔들려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에도 끝까지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한 그루 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심어진"입니다. 수동태입니다.
이 나무는 스스로 물가를 찾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좋은 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 나무를 돌보는 이가 그 나무를 들어다가 물가에 "옮겨 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선택한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붙들고
이 자리까지 이끌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올 수 없는 길을 우리가 걸어온 것입니다.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나무는 뿌리로 삽니다. 눈에 보이는 건 줄기와 잎과 열매뿐이지만,
실제로 그 나무를 살리는 것은 땅속 깊이 내려가 있는 뿌리입니다.
여러분, 뿌리는 세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 뿌리는 나무를 고정시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도 나무가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뿌리가 땅을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릴 수는 있어도 쉽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은
작은 시험에도 흔들립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일이 조금만 꼬여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나?"
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은 사람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요동쳐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뿌리는 생명을 공급합니다.
나무는 뿌리를 통해 물과 양분을 받아 살아갑니다.
햇빛이 아무리 좋아도,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말라 있으면 결국 죽습니다.
우리 신앙도 겉으로는 열심히 예배드리고 섬기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 직접 연결되지 않으면 점점 메말라갑니다.
일은 많지만 기도는 없고, 봉사는 하는데 말씀이 없고,
직분은 있지만 회개는 없다면, 그건 뿌리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와 같습니다.
셋째,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뿌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어둡고 좁은 땅속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뿌리가 없으면,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고, 섬김의 자리에 서는 건 귀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말씀을 붙드는 삶, 아무도 보지 않아도 순종하는 마음,
박수받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 그것이 진짜 '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뿌리가 아니라, 열매만을 보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들을 하죠.
"내 삶이 이렇게 힘든데, 무슨 복이야…" "형통해야 복이지, 이게 무슨 복이냐…"
그래서 8절은 열매보다 먼저 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를 잘 내린 삶은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이런 삶을 살아갑니다.
이 '더위'는 단순히 여름철 무더위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열기, 우리 삶의 위기를 말합니다.
어떤 분에게 더위는 갑자기 찾아온 건강의 위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더위는 깊어지는 부부 갈등, 끊어지지 않는 자녀의 문제,
고립감과 외로움의 계절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사랑하는 여러분
그 두려움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두려움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두려움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잎이 청청하며…"
'청청하다'는 것은 계절에 상관없이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아무 일도 없는 평탄한 인생"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위기가 있는데도, 가뭄이 왔는데도, 주변은 말라가는데도,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을 말합니다. 얼마나 큰 감사입니까?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게 진짜 복입니다.
가뭄이 없는 인생이 아니라, 가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이 복입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께 연결된 존재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가뭄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미 오래 가뭄을 지나고 계시고, 어떤 분은 지금 막 더위를 맞고 계시고, 어떤 분은 아직 평안해 보이지만 언젠가 또 다른 계절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가뭄이 없을 것"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분명하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가뭄이 와도, 거기서 말라 죽지 않을 길이 있다.
더위가 와도, 거기서 무너지지 않을 길이 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온 마음을 걸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자신을 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해야 할 일은 환경의 계산이 아니라,
내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정직하게 보는 것입니다.
이 초대가 우리에게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물가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물 없는 광야를 지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분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아니라, 가장 메마른 곳, 가장 뜨거운 더위 속에,
저주의 나무 위에 달리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우리가 물가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여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뿌리를 하나님께 내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것들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목마른 광야를 헤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 광야를 가셨죠.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가 겪어야 할 목마름을 대신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다시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물가이시며, 우리의 강변이십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단순히 물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 자체가 생수이십니다. 그분께 뿌리를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분께 뿌리를 내린 사람은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서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자기 의로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이 주시는 은혜로, 그분이 공급하시는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더위가 와도, 가뭄이 와도, 그분이 함께하시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를 향해 묻고 있습니다.
"너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의 물가가 되어 주겠다. 내가 너의 생수가 되어 주겠다."
이 초대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다시 그분께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든, 지금 내가 얼마나 메말라 있든,
지금 내가 얼마나 멀리 떠나와 있든, 다시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어 주시려고,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 결론 ] 말씀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함께 살펴본 예레미야 17장은 두 길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길과 여호와를 의지하는 길이죠.
길은 하나인데,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가 다를 뿐입니다.
우리의 뿌리를 다시 주님께 내립시다.
더위가 와도, 가뭄이 와도, 우리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우리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닿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청할 수 있고, 열매 맺을 수 있고, 복된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위에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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