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소망 위에 새겨진 십자가의 흔적, 할례
인간의 조급함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후 무려 십삼 년이라는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 이제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과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찾아오십니다.
창세기 17장은 우리의 완전한 절망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시작되는 무대임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침묵을 깨고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계시하십니다.
여기서 전능한 하나님, 곧 엘 샤다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왜 13년을 기다리셨을까요?
아브람과 사래의 몸이 완전히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완전히 빠지고 내 열심이 기각된 그 절망의 자리에서,
비로소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엘 샤다이 하나님의 은혜가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직 약속의 씨앗인 이삭이 태어나지도 않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열국의 아비와 어미로 부르시며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나 자격을 보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 완성될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시며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얄팍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 새로운 은혜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십니다.
남자의 육체의 일부를 베어내는 이 피 흘림의 의식은,
육체를 신뢰하던 옛사람의 본성을 철저히 끊어내고 죽음에 넘긴다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내 생명의 주관자라는 교만을 베어내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만을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 할례가 곧 그리스도의 할례, 즉 십자가 사건을 가리킨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와 육신의 소욕을 베어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살이 찢기시고 피 흘려 온전한 할례를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다 실패하고 깊은 침묵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내 인생의 가능성이 닫힌 것 같은 구십구 세의 절망감이 밀려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바로 내 육신의 힘을 빼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를 온전히 만나는 은혜의 시작점입니다.
철저한 나의 불가능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십자가의 능력이 내 삶에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
여전히 내 지혜와 내 방법을 의지하려는 교만함이 있다면, 오늘 십자가 앞에 나아가 그 헛된 자아를 베어내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내 육신은 날마다 죽고, 오직 나를 위해 쪼개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만 살아가겠다는
이 언약의 흔적이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선명하게 새겨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간의 끝은 언제나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13년의 캄캄한 침묵을 깨고 찾아오셔서 흔들리는 자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 언약의 징표를 새겨주신 그 신실하신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도 동일하게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넘어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굳게 의지하며,
마음에 그리스도의 할례를 새기고 거룩한 언약 백성으로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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