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에서 할례라는 피의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18장에서 마침내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의 장막에 친히 찾아오십니다.
무더운 대낮,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아래서 펼쳐지는 이 신비로운 만남은,
장차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중보의 은혜를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정오, 아브라함의 장막 앞에 세 사람의 나그네가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달려가 그들을 영접하고 떡과 송아지 고기로 풍성한 식탁을 베풉니다.
이 세 방문객 중 한 분을 장차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성자 하나님, 곧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로 봅니다.
거룩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모양으로 낮아지셔서,
먼지투성이인 인간의 장막에 들어와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시는 장면입니다.
이는 훗날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십자가에서 찢기신 살과 피로 영원한 생명의 식탁을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낮아지심을 미리 보여주는
아름다운 복음의 그림자입니다.
식사를 마치신 주님은 내년 이맘때에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언약을 확증하십니다.
장막 뒤에서 이 말을 듣던 사라는 속으로 웃고 맙니다.
자신의 생리가 이미 끊어졌고 남편도 늙었기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며 사라의 불신앙을 책망하십니다.
사라의 이 씁쓸한 비웃음은 오늘날 하나님의 능력을 내 이성과 경험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리는
우리의 얄팍한 불신앙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얄팍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셔서,
결국 그 비웃음을 기쁨의 참된 웃음으로 바꾸어 내시고야 맙니다. 구원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식탁 교제가 끝난 후, 하나님은 죄악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고 알려주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은 부당하다며 무려 여섯 번이나 끈질기게 간구합니다.
쉰 명에서 시작해 열 명까지 의인의 수를 낮춰가며 드리는 이 간절한 기도는,
조카 롯을 향한 애타는 마음인 동시에 멸망해가는 영혼들을 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참된 중보자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끈질긴 간구 속에서 우리는,
범죄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아버지의 진노를 막아서신 단 하나의 완전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선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지만,
막상 내 삶의 꽉 막힌 현실 앞에서는 사라처럼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때가 많습니다.
내 이성과 경험으로 볼 때 도저히 소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내 영혼을 향한 질책이자 위로로 받아들입시다.
내 얄팍한 계산기를 내려놓고, 불가능을 뚫고 일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아무리 간절했다 한들 소돔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 중보자의 명백한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피 묻은 손을 들어
우리의 모든 죄악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를 완벽하게 막아서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안은 바로 그 십자가의 완벽한 중보 기도 덕분입니다.
그 크신 은혜를 입은 자로서, 오늘 나 역시 멸망해가는 세상과 이웃을 가슴에 품고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작은 중보자로 살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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