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새벽설교 원고

142. 고난중에도 예배의 자리에서 승리하자, 20240912

하엘빠 2024. 9. 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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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난 중에도
예배의 자리에서 승리하자
날짜 2024912
본문 출애굽기 51-14(1-2) 비고 새벽 예배 설교

 

[본문의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모세와 아론의 첫 번째 시도가 행해지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은 오린 시간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고,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그들을 구원케 하셨죠. 바로 앞에선 모세와 아론은 무엇을 요구했고, 그에 바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용관찰]

우리 함께 내용관찰 1번을 보겠습니다.

1.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2

 

1절을 보니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서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2절에서 바로는 여호와를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왜냐면 바로는 애굽의 절대적인 권력자로서 애굽의 수많은 신들을 섬기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며,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게 여기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2. 바로는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립니까? 7-8

 

모세와 아론의 요청을 거절한 바로는 백성들을 더욱 가혹하게 만듭니다. 본문을 보니 3가지를 명령하죠.

지푸라기 공급을 중단하죠.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재료를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재료를 찾아서 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벽돌의 생산량을 줄이지 말라고 압니다. 작업량을 줄이지 말라는것이지요.

백성들에게 이중부담을 지우는 매우 가혹한 명령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로는 그들의 요구를 다름아닌 게으름의 결과로 봅니다. 느슨하게 일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에 따른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가혹한 명령을 내린것이지요.

이런 바로의 명령은 백성의 고난을 극대화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백성들의 요구에 상당히 가혹하게 반응한 바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연구와 묵상. 바로는 왜 이스라엘 백성의 노역을 가중시킵니까?

 

바로는 백성들을 상당히 억압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애굽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험의 요소로 인식했죠. 1장에서 이미 살펴봤던것처럼 백성이 번성하고 강해지면 애굽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이에 따라 그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나간다고 하니 바로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여겨졌을 수 있습니다.

곧 반란과 독립을 의미했을 수 있기에 바로는 백성들의 요청을 거절했으며, 더 힘든 노역을 시켰습니다.

 

둘째로 바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백성들의 왕인데 하나님께 제사를 하러 간다니 자신의 권위와 통치권이 도전받는 것으로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즉 그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위험 요소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더불어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칭송하고 예배해야 하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고대근동의 강국으로, 바로는 신의 아들이라 여겼습니다. 더 가혹한 노동을 통해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만들고 자신에게만 복종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바로는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상당히 억압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억압은 하나님의 뜻하신 계획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로의 거절과 억압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은 가중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개입하시려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느낀점]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도 무시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을 더 무겁게 한 바로를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바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교만과 무지가 어떠한지 깨닫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에 갇혀있지요. 바로는 말합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겠느냐?”고 말입니다. 얼마나 무지하며 어두운 영적 상태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며 자신의 힘과 권력만을 신뢰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너무 많습니다.

 

더불어 예배드리러 떠나겠다는 백성들의 요청을 단지 게으름으로 치부했습니다. 즉 바로는 예배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렸습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이고 교제이며, 영적인 회복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백성들의 삶의 목적이 바로 이것인데 바로는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예배의 홍수속에서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내가 바로처럼 예배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단지 습관적으로 주술적으로만 드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적용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인해 겪은 거절과 고난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노력을 하죠. 하지만 내 남편과 아내가 내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가정에서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이 된 후 가족들의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속에서 신앙 때문에 소외되거나

오해를 많이 받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의 길에서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결국 우리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단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예배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시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신뢰의 삶을 사십시오.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십시오. 매일 예배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고난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때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하십시오. 고난 가운데 외롭고 고립된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그 고통을 감당하기보다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며 이겨내십시오.

전도회와 순모임, 혹은 구역의 식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함께 나눌 때 위로가 되며 기도를 통해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안에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는 것이 굉장한 힘이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신뢰하시며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게 하옵소서

둘째, 고난이 찾아와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인내하며 예배의 자리에서부터 승리하게 하소서

 

 

142. 고난 중에도 예배의 자리에서 승리하자 (202409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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