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새벽설교 원고

환난날에 부르짖읍시다, 시편 120편 1-2절

하엘빠 2023. 9. 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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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환난날에 부르짖읍시다 (20230108).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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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난날에 부르짖읍시다 날짜 202318
본문 시편 1201-2 비고 새벽예배 설교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는 보통 성전 순례시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3번씩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야 시대가 좋아져서 탈것을 타고 교회로 쉽게 오겠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죠. 예루살렘 성전 근처나 혹은 근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야 조금만 걸어서 오면 되겠지만, 멀리서 사는 사람들은 어ᄄᅠᇂ겠습니까? 성전으로 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례자의 노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며칠씩 걸어서 성전으로 향하며 하나님께 위로와 힘을 얻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나와있죠? 올라간다는 것은 산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예루살렘 성전은 평지가 아닌 시온산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악합니다. 평지가 아니라 비포장이고 울퉁불퉁하며 나무뿌리,

돌등 거친 길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며 부르는 찬양입니다.

 

이들은 성전으로 올라가며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찬양을 했습니다.

120편 기자는 어떤 것을 말하며 어떤 위로를 얻고자 했을까요?

오늘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1.2절은 기도 응답에 대한 기쁨을 고백하고 동시에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은 환난을 당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이란 원 의미는 고통, 고뇌, 비탄, 고난, 역경, 대적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상황인지 분명하게 알 길은 없지만 그 어려움 가운데 지금 시인은 놓여있습니다.

 

제가 서두에 본 시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이것을 여러분들의 인생에 적용시켜보십시오.

우리의 인생길 역시 순례의 여정 아니겠습니까?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챤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환난과 어려움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이 땅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당합니다.

신앙 생활한다고 기쁨과 즐거움만 있습니까? 아니죠. 때로는 슬픔도 아픔도 눈물이

가득합니다.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런 환난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어려움 가운데, 위로와 힘이 되시느ᅟᅳᆫ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될 줄 믿습니다.

왜냐면 우리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결코 고통속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을 보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보십시오. 시편 기자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주셨죠.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저 힘들어서만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

신뢰를 가지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여기서 부르짖었다는 히브리 단어는 카라입니다. 이는 선언하다, 선포하다, 공포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단어가 어디에 사용이 되었냐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부르시고, 부르시고, 부르시더라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대로 아침과 저녁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편 기자는 확실한 응답을 기대하며,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시인과 같이 나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로 엎드리시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2절을 보면 시인은 다시 고백합니다. 먼저 여호와여! 라고 말하죠

이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부르짖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백합니다. 그의 상황이 어떠합니까?

어떤 어려움이 시인을 감싸고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앞선 1절에서

시인이 환난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지 않습니까? 그 부르짖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즉 시인은 지금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법정에서 사용된 단어들로서 어떻게 보면 타인들로부터 속임을 당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시인은 사실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 땅에 있습니다.

그 사실을 5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5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지금 시인은 이방 땅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이 어딘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시인은 1,2절에서

그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건져 달라고 고백하냐면 자신의 생명입니다. 여기서는 생명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원문으로 보면 이것은 영혼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건져달라고 합니다.

 

또 여기서 건져주소서라는 단어는 해방하다. 구원하다. 끌어내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지금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딘가에, 무엇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로 인해서 영혼의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 가지, 오직 기도밖에 없는줄 믿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건져주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어려움에 놓여있든지 간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르짖으십시오.

여러분 앞에 있는 홍해나, 큰 산, 골리앗들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인생의 순례길에서 늘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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