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새벽설교 원고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물으라, 사무엘상 14장 23절

하엘빠 2023. 9. 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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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물으라
날짜 2023321
본문 사무엘상 1423 비고 새벽 예배 설교

[본문의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놀라운 것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블레셋과의 대치중에 파수꾼이 적진을 살펴보니 그들이 우왕좌왕한 것을 봤습니다. 결국 그들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승리는 과연 누가 만든것일까요?

사울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오늘 본문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관찰]

우리 함께 내용관찰 1번을 보겠습니다.

사울의 파수꾼이 본 블레셋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우리 함께 16절을 읽겠습니다.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파수꾼이 높은데서 블레셋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블레셋 군인들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글성경으로는 무너졌다라고 표현이 되어있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녹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금 블레셋 군대이 마음은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완전히 녹아버렸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극도의 공포로 마음이 녹았다라고 나옵니다.

 

즉 앞서 몰래 나갔던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소년이 행했던 작은 전투로부터 시작되어

온 블레셋 군인들이 공포에 완전히 떨고 있는 장면이죠.

이렇게 허둥지둥 흩어져가는 블레셋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것이 내용관찰 2번입니다.

2. 에브라임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예전에는 블레셋 군대를 보고 그들의 반응으 어땠습니까?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것처럼

그들은 무서워서 숨었습니다. , 수풀, 바위틈, 은밀한 곳, 우물등 숨을 수 있는곳에는

다 숨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튀어나옵니다. 21절을 보니 돌이켜라고 나오죠. 그리고 22절에서

숨었던 모든 사람들이 블레셋의 도망 소식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쫓기던 입장에서 쫓는 입장으로 완전히 180도 변해버렸습니다.

아니, 갑자기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까요?

이 부분을 3번 연구와 묵상에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연구와 묵상]

문제 : 저자는 왜 이스라엘의 승리를 여호와의 구원으로 표현합니까?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사무엘상의 저자는 작지미상입니다. 누가 이 성경을 기록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하게

2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고 말할까요?

일반적으로 이미 이길 수 없는 싸움으로 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군사들의 사기가 다 꺽였고

다 숨어버렸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보여주십니다.

 

20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가서 보니까 서로 칼로 죽이고 있습니다. 마치 사사기에서 기드온가 미디안 군대에서 알 수 있는것처럼 서로 막 해합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이 가지 않도록 눈이 가려서 서로 죽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낮인것처럼 보입니다. 왜냐면 16절에서 본것처럼 파수꾼이 눈을 들어서 본즉

블레셋 군대가 보였기 때문이죠. 낮이라면 왜 아군이고 적군이고 구분이 안될까요?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셨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승리를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사울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4번 느낀점으로 가보겠습니다.

[느낀점] 여호와께 순종하기보다 자신의 지혜와 통찰력에 의존하는 사울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언약궤를 가져오라 합니다. 여기서 또한 우리는 사무엘상 초반에 나온 홉니와 비느하스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적처럼, 우상처럼 언약궤를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사울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는 모습이죠.

 

 

그리고 19절도 함께 보겠습니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사울은 워낙 다급하니까 제사장을 통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을 보니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제사장이 하던일을 중단시킵니다.

그리고는 곧장 블레셋 진영으로 가죠.

 

어렵고 힘들때는 하나님을 찾으려 하다가, 뭔가 일이 좀 잘 풀리는 것 같으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내려놓습니다. 아예 하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다른것들을 의지하려는 경우들이 많지 않을까요?

마치 사울이 언약궤를 가지고 오거나 제사장을 막은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 힘으로, 나의 지혜로, 다른 것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 우상숭배와 다를바 없을 것입니다.

혹시나 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는 않을까요?

 

이미 하나님은 일전에 백성들이 미스바에 있을 때 큰 우레소리를 통해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셨으며, 그들을 패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과 백성들은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이름했죠.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 또 기억하지 못하는가?

내가 있는데, 왜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숨기도 하고, 언약궤를 가지고 오지?

참으로 답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나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이런 경우들이 있었습니까?

여기서 5번으로 가보겠습니다.

5. 내 생각과 상황에 함몰돼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때로는 눈 앞의 현실 때문에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번 아브라함을

생각해봤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의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가버립니다. 그리고 사라를 뺏길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하죠. 사실 아주 큰 위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분명한데,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 뜻대로 행하고자 했던

많은것들이 있다면 이제 결단하며 그것들을 지워버리며 좋겠습니다.

 

5-1 하나님의 역사에서 소외되지 않고 그 중심에서 쓰임받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기억할 것은 내 생각과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에서 사실 사울은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적진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대신 언약궤를 의지합니다.

어찌보면 요나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아보입니다. 오히려 요나단이 하나님께 쓰임받았죠.

 

사울은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이 무언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으며 좋겠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앞에 기도로 서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내 뜻이,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고 순종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물으라처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첫 번째,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두 번째, 영적 분별력과 판단력으로 무장돼 늘 주님의 뜻을 이루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세 번째, 길동공동체가 주안에서 더욱 하나되고 섬기며 낮아지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롭게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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