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새벽설교 원고

사무엘상 27장 1-7절

하엘빠 2023. 9. 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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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의지하는가
날짜 2023511
본문 사무엘상 271-7 비고 새벽 예배 설교

[본문의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의 배경은 사울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들어간 다윗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긴 하지만 여전히 사울에게 쫓기고 있던 다윗은 그의 판단으로 이스라엘이 아닌 블레셋으로

도망치고자 했습니다. 다윗의 이 모습을 보며 많은 것들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용관찰]

우리 함께 내용관찰 1번을 보겠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어디로 도망치려고 합니까?”

 

1절을 보니 다윗은 생각합니다. 이곳 이스라엘에 있다가는 사울에게 잡힐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블레셋의 영토로 들어가야겠다. 그곳으로 가면 사울이 나를 찾는 것을 단념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데리고 블레셋으로 들어갑니다.

 

1절에 나오는 후일에라는 원어의 뜻은 조만간입니다. 다윗이 생각하기에 조만간, 곧 사울에게 잡힐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두 번씩이나 사울을 살려주었지만 사울은 끝까지 자신을 잡을것이라는 생각에 블레셋으로 몸을 숨기려고 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안타까운 것이 등장하죠. 이전과 같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기도하지 않았던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산한 다윗입니다. 아기스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땅을 주죠. 그것이 내용관찰 2번입니다.

그것이 내용관찰 2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2. 아기스는 다윗과 함께 한 일행에게 어느 지역의 땅을 줍니까?

 

블레셋으로 들어간 다윗은 아기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합니다.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나와 사람들이 거기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5절 하반절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이 말은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인데 아기스 왕과 함께 수도에서 살 수 없습니다라는 표현이죠.

 

다윗의 이 요청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중하반에 기록이 되어있는 것처럼

종교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또한 충분히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기스의 눈을 피해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자 하는 다윗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요?

성경은 그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따로 성읍을 달라고 요청하는 다윗에게

아기스는 시글락을 줍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14개월동안 거주하죠.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3번 연구와 묵상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연구와 묵상]

3. 다윗은 왜 과거 미친척 하면서 도망 나왔던 블레셋으로 다시 피신합니까?

 

다윗은 지금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 가드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예전에 살펴봤더것처럼 사무엘상 21장에서 다윗은 똑같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갑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싸중이죠. 그곳으로 피하면 사울의 영향력, 사울에게 더 이상 잡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이전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닌 수백명을 거느린 리더입니다. 리더로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피신시켜야 할 명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블레셋이죠.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무엇일까요? 4번 느낀점으로 가보겠습니다.

[느낀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과거 위험을 겪었던 블레셋에 정착해 편한 삶을 선택한 다윗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먼저는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사울을 살려주기도 했죠. 그리고 어제 함께 살펴본 2624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스스로 이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는데, 그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리고 더 아쉬운 것은 본문 어디를 살펴봐도,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었다거나 기도했다는 문장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지금 다윗은 어ᄄᅠᆫ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을 한것이죠. 1절을 볼까요?

1절을 보니 다윗은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라고 나옵니다. 다윗은 혼자 생각했었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안정된 것으로 판단하고 블레셋으로 이동합니다. 이런 부분이 좀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이 모습이 곧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실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생각과 뜻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때때로 말씀이 기준이 되기보다 내 생각, 내 마음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혹시나 그런 경험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5번 적용으로 가보겠습니다.

5. 눈앞에 상황에 흔들려 말씀보다 내가 편한쪽으로 결정한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곧장 창세기의 롯이 생각났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다가 서로 너무 커져서 갈라지기로 했죠. 그런데 롯은 다른 곳이 아닌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그쪽을 선택합니다.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라고 말하는것처럼 롯은 눈앞의 좋아 보이는 상황을 보고 그곳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됩니까?

 

연합싸움에 휘말려 잡혀갑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를 구해주죠. 그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하고, 편한 것을 선택했으나 그 결과는 위험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웠죠.

 

우리 역시 똑같습니다. 내 생각,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반드시 하나님께 묻고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5-1 당장 편하고 쉬운 길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실천하시겠습니까?

 

어제 새벽에도 나눴지만 우리는 먼저 철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잠언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리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먼저 들어야 내가 순종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첫 번째 선지자 사무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사무엘상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내려놔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입니다.

이사야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와 같이 내 생각을 먼저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 당장 눈앞에 편하고 쉬운 길이 보이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인내하며 인도받게 하소서

셋째, 길동에 있는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고 개인 기도제목으로 자유롭게 기도하시다가 돌아가겠습니다.

32.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의지하는가 (2023051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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