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하나님, 나의 발걸음을 붙드시다, 20240904

하엘빠 2024. 8. 31. 16:29
728x90
반응형
제목 하나님
나의 발걸음을 붙드시다
날짜 20240904
본문 시편 1211-8 비고 수요예배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난 삼일간 평안하셨지요?

모두가 행복한 시간들, 은혜로운 시간들만 보내면 좋겠지만

삶이 그렇게 내 생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만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합니다. 많은 것을 경험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순례의 길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때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은 이 순례의 여정에 더욱 힘써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21편입니다. 121편의 표제어를 보십시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은 순례자의 노래로 분류되며,

실제로 백성들이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유대인 남성들은 율법에 따라 1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신명기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겐 쉬웠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어 어디서든지 교회로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자체가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남자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으니, 그 길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순례의 길을 걸으며 이 시편을 부르며 힘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에 따라 상황과 문제들은 달라졌지만,

누구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도움을 구해야 될까요?

오늘 말씀을 한절씩 살펴보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1절에서 시인은 산을 향해 눈을 듭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입니다.

 

시인은 순례의 길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순례의 길이 힘들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던 시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시인인 재미있게도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이어서 답을 내립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인은 자신의 도움이 다름아닌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소개입니다.

어떤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도움 없이, 수고 없이, 단지 말씀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세상 그 어떤 존재와 비교할 수 없는 그 분이 지금 누구의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까?

 

나의 도움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

바로 여러분들의 도움이 되어 주시는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합니까?

 

이어서 3절과 4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어주시는데,

순례의 길에서 어떻게 도와주시는지 시인은 명확히 설명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실족이 무엇입니까? 원어의 의미로 보면 미끄러지다, 떨어지다, 넘어지다는 의미이죠.

 

예루살렘 성전은 시온 산에 있습니다.

산은 평지가 아니고 경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는 길이 비포장이었습니다. , 나무뿌리, 구덩이등 언제든지

순례자들을 넘어뜨릴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그 길이 좀 가파르겠습니까?

그 길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굳게 붙잡아 주신다고 시인은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혹시 이런 어려움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너무 힘들어서 비틀비틀거리다 쓰러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혼자 끙끙거리고 아파할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만 기도로 대성통곡할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세상과 사람들은 나를 외면하고, 내 문제에 별 관심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내게 관심을 가지시고 나를 도우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시며 붙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와 돌봄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지시고 붙드심으로 우리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실족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3절 하번절에 나오는 문장들은 4절에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4절을 다시 한번 볼까요?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너무 멋진 표현으로 사랑하는 백성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정에 사랑스런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며 아이를 돌봐줍니다. 먹을 것도 챙겨주고, 기저기도 갈아주고, 때마다 같이 놀아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스럽고 예쁘더라도 24시간 지켜줄 수 없습니다.

부모 역시 인간이기에 육체적 한계와 시간적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한들 24시간 돌봐줄 순 없습니다.

이미 자녀를 낳아 길러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시인의 이 표현은 어떤 의미입니까?

인간이 신뢰해야 할 분명한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죠.

 

이 맥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당시 고대 근동의 신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당시 고대 근동의 많은 민족들은 인간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신들을 믿었습니다.

그들의 신들은 피곤하거나 잠이 들기도 했으며, 때로는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알 신앙에서는 바알이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잠을 자고 있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신의 주의를 끌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어디에서 알 수 있나면 열왕기상 18장 갈멜산 전투에서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조롱하며 이렇게 표현했죠.

 

열왕기상 18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런 고대근동의 신들과는 달리 우리 하나님은

지금 시인이 고백하는것처럼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는

마치 24시간 켜놓은 카메라처럼 우리를 늘 지켜주시고 보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시인은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피곤함 없이, 언제나 깨어 계시며,

그의 백성을 지켜보시는 분이라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이방 신들과는 달리, 우리의 하나님은 항상 경계하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때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인생의 순례길을 가는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큰 위로와 안심이 되어주시지요.

 

그저 지켜만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낙망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인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계속해서 설명하지요

 

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지키다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에 어떤 어려움으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것이죠. 지금 5절에서도 그것을 말합니다.

 

시인은 지금 순례의 길을 행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광야를 지나갈겁니다.

왜냐면 주변이 온통 광야이기 때문이지요.

 

광야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물과 그늘입니다.

물이 없으면 며칠 내로 생명이 위태로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늘처럼 보호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출애굽을 통해 광야로 들어온 백성들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자신의 조상들의 역사를 기억하며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때처럼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이지요.

 

6절을 보십시오.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 지켜주시고 해를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하죠

 

이스라엘은 광야이기에 낮과 밤의 온도차가 상당합니다.

낮에는 내리쬐는 태양 빛이 너무 뜨겁지만 밤에는 온도가 상당히 낮아집니다.

그래서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실제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뜨거움과 추위에서도 지켜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밤낮으로, 24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거죠.

 

조금 더 나가서 생각해본다면 고대 근동에서 신들은 곧 태양과 달로 표현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고대근동의 상황을 한번 살펴볼까요?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태양과 달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Ra)가 가장 강력한 신으로 숭배되었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달의 신 나나(Sin)가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편의 시인은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강력한 신으로 숭배되던 태양과 달조차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태양과 달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시는 주권자이시며,

그 어떤 신도 그의 백성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시인이 말하는 이 고백은 당시의 신관을 깨트리는 얼마나 혁신적 말씀이자

선포인지 분명히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 어떤 이방 신들도, 아무리 강력하다고 말하는 타국의 신들도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결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디가드, 가장 든든한 빽이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상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은 이런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순간들, 내가 인지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보호과 손길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자랑합니다.

내 뒤에 어떤 큰 권력자가 있으니 까불지마,

나는 정계의 누구누구를 아니까 까불지마,

나는 거물들과 친분이 있으니 나한테 잘해야해! 조심해!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천지를 지으신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어려움에도 위협과 문제에도 나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오른편에서 그늘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 지켜주시는 방패같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신실하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안함과 안식이자 피난처이지요.

 

이어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지금 7절에서는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장치가 발견됩니다.

그게 반복과 평행법입니다.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지킨다입니다.

지금 7절에서 2번이나 반복되고 있지요.

 

성경에서 중요한 것을 강조할 때 종종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것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의 중요성, 메시지를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지요.

시인이 계속해서 지킨다 지켜주신다고 반복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시인은 이어서 병행법을 사용해서 더 잘 이해하도록 합니다.

너를 모든 환난에서 지켜주시며네 영혼을 지키시로리다를 병행시켜 설명합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문장을 그대로 말하며 읽는 독자들이 꼭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시인은 여기에서 모든 환난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순례의 길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인생길들에 적용할 수 있지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과 어려움들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고난을 겪고 계십니까?

때로는 남편과 아내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가 있겠죠.

더불어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 시대에 돈으로 인한 다툼과 싸움들도 있을 수 있죠.

어떤 고난과 아픔들이 여러분들의 삶을 괴롭히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 가운데서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은

그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굳건한 확신입니다.

 

구약에서 이런 본문들은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두가지 정도만 예를 들어볼까요?

시편 919-10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화, 어려움, 재앙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이사야 432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많은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해주십니다.

더욱이 더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7절 하반절이지요.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할렐루야! 우리의 신체, 우리의 삶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영혼입니다.

사탄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의 영혼을 훔치고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신약에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도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했을까요?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끝날까지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얼마나 더 큰 위로와 힘이 되겠습니까?

 

마지막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8절은 시인이 시를 마무리하는 결론이지요.

하나님께서 시인의 모든 출입을 지키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1차적을 보면 순례의 길의 출발과 마지막까지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들을 포함하고 지켜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켜주신다는 표현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앞서 3-4절에서 살펴봤을땐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제는 '지금부터 영원까지'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키십니다.

현재와 미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보호하십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수기 말씀을 통해 이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민수기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신약에서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21편을 통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꼭 기억해야 할 세가지를 한번 정리해볼까요?

 

첫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들, 순례의 여정길에서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24시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시지요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육신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지켜주십니다.

신앙생활하며 낙망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삼키려고 할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끊임없는 영적 전쟁의 상황가운데서도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보호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우리를 붙들어주셨고, 영원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삶을 책임져주시겠다 하십니다.

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순간들을 지켜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며,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영원까지 나를 지켜주심을 기억하며

이 하나님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40904 하나님, 나의 발걸음을 붙드시다.hwp
0.08MB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