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죄의 도미노, 20240529

하엘빠 2024. 5. 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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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의 도미노 날짜 2024529
본문 사무엘하 111-5 비고 수요예배설교

 

할렐루야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앞뒤좌우 인사하겠습니다.

죄와 싸워 승리합시다

 

성경은 독특한 책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그 종교의 신이나, 인물들의 위대함을 그리고 있죠. 그들의 연약하거나 부족한 점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은 철저히 인간의 나약함과 연약함, 부족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성경 인물들중에서 항상 세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골리앗과 싸워 이겼으며, 이스라엘의 2대왕으로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소리를 들었죠. 그의 후손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만큼 굉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윗의 위대함만 그려내고 있지 않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죄악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위대한 다윗도 넘어집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누구나 예외없이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도, 중직자도, 성도들도, 그 누구도 예외없습니다. 얼마 전 조국교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한 분의 목사님께서 다윗과 같은 죄를 지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죠.

누구나 방심하지 않고 긴장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완전한 승리를 가지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날마다 죄와 함께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죄와 타협하며,

죄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히브리서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윗의 모습을 통해 그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 삼아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죄와 싸워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윗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7계명을 어겼죠.

사실 다윗은 7계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계명들도 어겼습니다.

살인, 도둑질, 거짓 증거, 탐내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여긴것등

다윗은 순식간에 많은 율법들을 어겼습니다.

 

왜 다윗은 이런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요?

함께 오늘 본문 1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하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앞선 10장을 보면 암몬과의 전쟁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았죠.

그래서 1절을 보니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부하들만 보내고

그는 현재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는 상황입니다.

 

왕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왕을 요구했습니까?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을 이끌고 싸워줄 왕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세워졌고, 다윗이 세워졌습니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높여줘야 할 다윗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2절 서두를 보니 다윗은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말이 낮 동안 다윗은 게으르게 누워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다윗은 있어야 할 장소를 망각하고 성에 있었습니다.

그냥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게으르게 지내며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시작은 이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됩니다.

혹시 도미노 아십니까? 작은 플라스틱들을 세워놓고 하나만 넘어트리면 줄줄이

끝까지 넘어지는 게임이 도미노 게임입니다.

 

지금 다윗의 이 행동이 바로 첫 번째 도미노를 손가락으로 미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출발되었던 것이지요.

 

2절 서두를 보니 저녁때에라고 나옵니다. 이는 이제 해가 지기 시작하여

어둑어둑해질 시기를 뜻합니다. 해가 지면서 완벽한 어둠이 찾아오는 그때,

더 쉽게 말해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그때입니다.

 

이때는 눈이 어두워져 사물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시간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면 전기가 있어 불이 밝히 보이겠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죠.

 

달빛이나 횃불의 의지해서 봐야 합니다. 멀리도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

2절을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죠.

 

학자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지금 밧세바가 자신의 집 옥상에서 몸을 씻는다는 것은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죠? 남들에게 잘 보이는 시간이라면 누가 샤워를 하겠습니까?

 

이미 어둠이 젖어 사물을 뚜렷이 분별하기 어려운 그 시기에 밧세바는 몸을 씻고 있었고,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거닐고 있었죠. 그런데 다윗이 그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한 여인이 보이는데 어떻게 보여요? 심히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말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니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다라고 말합니다.

 

죄에 빠진 다윗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지금은 어둑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왕궁에서 민가까지는 거리가 있겠죠?

그리고 벌거벗고 샤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른 그 눈을 거둬야 했지만

다윗은 지켜봤습니다. 보니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냥 아름다움이 아니라 심히 아름다워 보입니다.

 

지금 사용된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똑같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날마다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지만 마지막 여섯째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난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너무 너무 기쁘셨다고 사용하는 이 표현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바라보고 그녀가 그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밧세바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아무리 못생긴 추녀라도 다윗은 심히 아름답게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미 다윗은 죄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죄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온통 마음이 빼앗겨 버린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기민성입니다. 한번 따라해볼까요? 죄의 기민성

기민성이란 죄가 빠르다는 겁니다. 다윗을 찾아온 이 죄는 다윗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여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다윗은 자신의 욕망에, 욕정에,

죄를 범하고픈 마음에 완전히 패배했죠.

 

죄는 이처럼 빠르게 사람들을 장악합니다.

가랑비에 옷젖는 정도가 아니라 태풍이 몰아치듯 순식간에 영혼을 장악합니다.

이어서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욕망의 노예가 된 다윗은 사람을 시켜 알아봅니다.

그의 충성된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죠.

여기서도 다윗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보고를 받았으면 멈춰야죠.

 

밧세바는 유부녀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입니다.

이성을 찾고 멈췄어야 하나 다윗은 폭주 기관차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데려도 오도록 시키죠.

 

죄에 사로잡힌 다윗은 계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지금 온통 죄를 저지를

생각에만 빠져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야가 전쟁터에 있는 오늘 이 밤, 죄를 저지를 절호의 기회를 삼았습니다.

지금 다윗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대담성입니다. 따라해볼까요? 죄의 대담성

우리는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며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 그 착한 사람이 그랬어? 정말 그 사람이 그랬단 말이야? 말도 안돼~~” 하고 놀라는 것이 바로 죄의 대담성입니다. 대범해집니다.

 

다윗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다윗의 범죄는 단지 밧세바 하나만 취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멸시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깡그리 무시했지요.

 

그 결과 어떻게 될까요? 4-5절을 보겠습니다.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밧세바를 불러들인 날은 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고 난 뒤였습니다.

 

왜 성경은 밧세바를 부정하다고 표현할까요? 성경은 지금 밧세바의

여성적 생리현상을 말합니다. 왜 굳이 여성의 월경을 언급하고 있을까요?

 

예전에 이 본문이 너무 궁금해서 실제로 제가 산부인과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여인의 생리가 끝나고 난 뒤에는 임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난자가 수정되지 않아 착상이 불가능해서 생리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임신이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이 너무 무섭습니다.

성경은 지금 밧세바가 결코 임신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다윗은 밧세바가 생리가 끝난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왜요? 생리가 끝난 날이라면 임신이 불가능해서 밧세바와 동침한들

흔적이 남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것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밧세바가 지금 임신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날이 분명한데

그녀는 임신을 했습니다. 물론 임신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이 예외가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침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밧세바와 동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겠죠.

 

하지만 다윗의 은밀한 죄는 뚜렷한 결실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그 열매를 남깁니다.

또 다른 죄의 특징이 바로 죄의 결실성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아무도 모르게 행한 죄라 할지라도 그 죄의 열매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죄 하나를 짓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이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점점 커지게 됩니다.

다윗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엄청난 죄를 짓습니다.

 

더욱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야를 죽입니다.

6계명도 범하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무서운 죄의 확산성입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죄는 가인과 아벨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도망을 칩니다. 그 죄는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점점 커집니다. 창세기 6장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그 죄악이 세상에 가득해졌습니다.

 

만약 우리도 작은 죄 하나를 짓는다면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죄가 점점 커져 또 다른 죄를 낳고 또 다른 죄를 낳고 더 큰 죄를 범하게 되고

그 죄의 열매를 마주보게 됩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지금 우리야를 죽이고 나서 밧세바를 곧장 데려 옵니다.

왕비로 삼은것이지요. 시간이 지나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몇 달전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태어난 아기를 안고 웃는 다윗과 밧세바를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상황이 다윗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어찌 악을 행하리요라고 했건만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은 완벽한 범죄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죄된 모습을 본 사람들이 많았죠.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오고 데려다 준 사람이 있죠.

그녀를 침실로 안내하 사람도 있죠.

다윗의 침실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경비병도 있지요.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할 때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야가 죽고 밧세바를 궁으로 데리고 와서 아기를 낳을때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다윗이 회개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다윗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도미노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된 그 죄가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커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처럼 우리는 죄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감추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져가야 할 줄 믿습니다.

 

나단 선저지자가 와서 책망할 때 다윗은 비로소 자신의 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장 하나님께 엎드려 금식하며 울며 기도합니다.

바로 회개의 자리에 나갔던것이지요. 그렇게 고백한 시편이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다윗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본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입니다. 이는 과녁을 빗나간다는 것입니다. 멋진 표현이죠

과녁을 빗나간다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동떨어진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 선하고 바르고 정직한 길로 가야 되지만

때때로 죄악의 길로 빠집니다. 때로는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 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좋아 썩어 없어질 것들을 쫓아서 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요셉처럼 죄의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본문의 다윗처럼 죄와 타협하며 죄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습니다.

죄의 기민성, 죄의 대담성, 죄의 결실성, 죄의 확산성입니다.

 

죄는 빠르고, 대담하며, 반드시 열매를 맺고, 더 확산되어 집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찬송가 261

20240529 죄의 도미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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