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두나미스, 사도행전 12장 1-19절

하엘빠 2023. 8. 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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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나미스 (2022121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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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나미스 날짜 20221214
본문 사도행전 121-19 비고 수요 오전 예배

 

찬송가 546, 191, 197통성기도 대표기도 본문 설교

 

지난주에는 사도행전 6장으로 우리의 기본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며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전통적으로 말씀 기도 성례가 은혜받는 방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 말씀은 뭐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우리의 영혼을 찔러 쪼개며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반드시 붙들어야 합니다.

 

2. 성례는 세례와 성찬으로 구분이 되어집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 칼빈은 이 성찬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성찬식을 매주 하라고 할 정도 였습니다. 떡과 잔을 들며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기도가 있지요? 기도는 더 말하지 않아도 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실 것입니다.

기도는 성경에서 나오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기도의 선배들이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틈만 나면 기도하러

한적한 곳을 찾으러 가셨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기도의 대가라고 불리는 E.M 바운즈 선생님의 명언이 있습니다.

옷을 만드는 것은 재단사의 일이고, 구두를 수선하는 것은 구두장이의 일이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일이다. 기도의 실패자는 생활의 실패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것이 뭐라고 말합니까? “기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중세의 천년은 영적인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당시는 교회가 부패하고, 성직자가 부패하고, 온 성도들이 다 부패했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부패하고 썩어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도 썩었을까요? 아닙니다. 말씀은 오히려 더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도들이 기도가 필요 없었던 것은

감히 성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사제를 통해서만 나가야하며, 죄도 사제한테 고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도가 완전히 사라진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악조건 가운데서도 기도의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으며, 기도는 살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를 사용하십니다.

 

노아를 기억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썩어 부패한 시대에 하나님은 순종하고 기도하는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썩은 것처럼 보이는 종교개혁 시대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루터와 칼빈에게

더 많은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도대체 기도가 무엇이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다가 잡혀서 죽고,

오늘날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바로 오늘 본문에서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사도행전 12장입니다. 먼저 사도행전의 큰 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사도행전은 총 2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장은 유대인(사도)이 유대인에게 전도하는 모습

9-12장은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모습

13-28장은 이방인이 이방인에게 전도하며 선교사를 파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7장을 보면 순교하신 스데반 집사님이 등장합니다.

2장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불을 받아 열심히 사역을 하다가,

스데반 집사님 이후로 본격적으로 핍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7장 후반에 스데반 집사님이 죽을 때 사울이 등장하며 8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습니다.

9장에서는 바울이 회심합니다. 10장부터 다시 베드로의 사역이 등장하는데 12장에서 잡히죠

 

오늘 읽은 본문 2절을 보니까 야고보가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베드로를 잡죠.

잡아서 앞서서 순교한 야고보처럼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냐면 1절에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헤하려 하여라고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헤롯은 베드로를 죽이려고 잡은거예요.

 

4절을 보니 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데 네명씩 네패에 맡깁니다.

16명이죠. 4명씩 교대로 돌아가면서 베드로를 지키는 겁니다.

이들이 이렇게 베드로를 열심을 다해 지키는 이유는, 베드로가 초대교회에 있어서

핵심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앞 장들을 살펴보면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한 번에 3천명씩, 5천명씩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증거한 것이 아니라 10장을 보니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이제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하며 그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아마 굉장히 싫은 인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1절을 보니 당시 왕은 헤롯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헤롯은 독특한 인물이빈다.

 

성경을 보니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두 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인 왕이 헤롯입니다.

그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지금 12장에 나오는 이 헤롯입니다.

 

12장의 이 헤롯은 당시 로마에서 자라났고 황제가 될 사람들과 어릴적부터 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로마의 속국인 이스라엘을 다스릴 권세를 받았거든요. 근데 유대인들에게는

완전히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당시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를 잡아 죽였고,

이제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고 옥에 가둔겁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나머지 사람들이 했던 행동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옥에 갇혀있는 상황이고,

교회는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더라간절히 기도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교회와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간절히라는 단어는 또 다른 뜻으로 뜨겁게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지금 간절하게, 뜨겁게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지금 베드로는 옥에 갇혀 있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베드로는 두 명의 간수 틈에 끼어서 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수갑을 군인 한명씩과

채우고 자고 있는 겁니다. 너무 불편하겠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잠에서 깨어나겠죠.

 

6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이 말은 이제 아침이 밝으면 베드로는 끌려나와 야고보처럼 순교하게 됩니다.

 

여기서 입장을 바꿔놓고 여러분이 베드로라면 잠이 오겠습니까?

감옥에 갇혀있고, 쇠사슬에 매여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잠이 온다면 그게 비정상적인것이지요.

 

근데 지금 베드로는 자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아요? 자고 있데요.

여기 나오는 잠들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이마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 약 18번 사용이 되었는데, 보통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 말씀하시죠?

지금 본문에 등장하는 단어와 똑같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죽은 것처럼 완전히 잠들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7절을 보니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더니 베드로의 옆구리를 한 대 치고 깨웁니다.

그러고 일어나라고 하니 베드로의 손에 매달려있던 쇠사슬을 벗겨집니다.

잘 기억해 보십시오. 아까 베드로 양 옆에 군인 2명이 함께 쇠사들을 메고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밖에는 또 2명이 지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경비가 삼엄하냐면 사실 이미 5장에서도 제자들이 한번 탈출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기적을 일으킬 때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는데,

주의 천사가 밤에 옥문을 열고 이끌어 내었단 말입니다. 그게 517-19입니다.

 

여기서 저자 누가의 의도를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 헤롯 아그립바 1세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헤롯은 또 다시 제자들이 탈출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고

있지만.. 그게 하나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이제 베드로가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천사를 따라 나가는데 아무도 보지 못하죠

파수꾼들과 간수들이 분명히 어디에 있었지만, 그들은 베드로와 천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 대한 아무 기록이 없어요. 10절에는 지났다라는 기록만 있어요.

 

, 여기는 감옥입니다. 모든 출입구와 모든 문, 죄수들이 탈출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곳에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 모두가 베드로를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국 헤롯은 19절에서 파수꾼들을 죽이라합니다

 

이제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갑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 놀랍습니다. 12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끊임없이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인줄 믿습니다.

 

베드로의 죽음이라는 큰 문제 앞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다른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제 앞에서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기도입니다.

 

때때로 문제 앞에서 좌절하고 넘어지고 쓰러진 성도들이 있습니까?

그럴 때 여러분들이 속한 교구와 구역에 그 문제들을 내어놓고 함께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기도 제목을 함께 내어 주시고,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할 수 있는데로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오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되어 한 마음으로

그 문제, 혹은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면 해결이 되는 줄 믿습니다.

 

저는 우리 길동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 길동의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역사상 언제나 그랬습니다.

성경이 이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위기가 극복이 되었고,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으며, 함께 기도할 때 감당치 못할 은혜가 부어졌고,

함께 기도할 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과 백만인 구령운동이 이러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 역시

기도로부터 시작이 되었씁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놀라운 지혜를 얻으십시오.

우리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 우리 길동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됩시다.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들이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그의 쇠사슬을 푸시고 옥문을 열고 베드로를

건지십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아니 기도하는 도중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평생 5만번 응답을 받은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가 있지 않습니까?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다 아멘

 

따라해보실까요? 기도란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다. 무엇을 붙잡는다구요?

능력입니다. 능력! 권능!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권능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벨상을 만든 사람은 노벨입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하고

또 다른 폭탄들을 개발하여 막대한 재산을 벌어 재단을 설립해서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겁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두나미스입니다. 이는 헬라어로 권능,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두나미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데 바로 다이너마이트입니다.

 

 

폭발!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권능은 폭발적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폭발과도 같습니다.

 

기도할 때 쇠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매일 새벽과 수요비전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에

하나님의 두나미스가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이에 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두나미스)에 있음이라

 

사랑하는 길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이 두나미스를 경험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의 두나미스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길동교회에 폭발적으로 되살아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의 문장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모든 민족보다 강하다.

무릎 위에 놓인 나라는 무기 아래 놓인 나라보다 더 강하다” X2

 

이렇게 기도하며 나가는 저와 사랑하는 길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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