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메고 올라가라, 창세기 50장 25절

하엘빠 2023. 8. 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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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메고 올라가라 날짜 2023412
본문 창세기 5025 비고 수요예배 설교

 

[서론 ] - 나긋나긋하게 천천히

얼마전 안타까운 뉴스를 봤습니다. 한 음주운전자로 인해 9살 여자 아이가 사망했습니다.

그 부모가 인터뷰하는데 그중 한 내용이 이렇죠.

우리 아이가 이렇게 먼저 갈지 몰랐다. 충격이다라고 말입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죽음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여기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 주님께서 이미 완전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신 줄 믿습니다.

둘째, 우리가 예비된 본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에녹이나 엘리야가 아닌 이상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만 그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서론 ] - 약간 소리 높여서 강조

결국 그 말은 우리가 참된 소망을 두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비록 세상에서 살며, 세상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이 결코 이 땅이 끝이 아닙니다.

오늘 이런 관점으로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과 요셉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 - 본론으로 이어지는 다리

창세기에는 4명의 족장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죠.

하나님의 언약은 이 4명의 족장들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물론 나중에는 요셉이 아니라

유다의 후손으로부터 메시야가 나오긴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죠.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간 후 결국 나중에 요셉이 살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때 요셉은 가나안에 있는 아버지 야곱을 모셔오기 위해서 수레를 보냅니다.

그게 창세기 45장의 내용입니다. 한번 볼까요? 4527입니다.

창세기 45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기운이 없는 야곱이 소생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4528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28절을 보니 야곱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죠.

야곱은 요셉이 정말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그냥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혹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기억나십니까?

 

방송을 보면 죽은 줄 알았던 가족들을 찾고 만나는 장면들을 보면 보는 사람들도

가슴이 뭉클해 눈물을 흘립니다.

이렇게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는 것은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누구보다 요셉을 사랑했던 야곱은 지금 당장 애굽으로 달려가 요셉을 만나고 싶었겠죠.

하지만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기전 브엘세바에 이르러 희생제사를 드리며 뜻을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창세기 463-4절입니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야곱은 왜 하나님께 묻고 그 땅을 떠나기에 주저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한 땅이 가나안인데, 그 가나안을 떠나도 되는지 궁금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시며 다시 올라 올 것이다라고 굳게 약속해주십니다.

이렇게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지내다가 147에 죽음을 맞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죽을 때 자신을 조상의 묘지에 장사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조상의 묘지는 창세기 23장에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헷 족속의 사람에게 막벨라 굴을

400에 삽니다. 여기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그의 첫째 아내 레아가

묻혀 있어요. 그곳에 자신을 장사해달라고 말입니다.

 

이 의미가 중요합니다. 왜 야곱은 애굽이 아닌 다시 그곳으로 가서 묻히길 원했을까요?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몸은 애굽에 있었지만, 그의 소망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나를 조상들의 묘지에 장사하라고 하는겁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애굽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비록 구별된 유목민이라 고센 땅에서

살긴 했겠지만 요셉 때문에 애굽에서 엄청난 풍요를 누리며 살지 않았을까요?

반면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하지만 당시는 굉장히 척박하고 먹을 것도 없는 그런 땅이었죠. 그래서 야곱이 양식을 사기 위해서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냈던 것이죠.

 

그러니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애굽과 가나안이 비교되었을 것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선진국과 후진국,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로 표현이 되겠죠.

그들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본론 2] - 궁긍즘을 던지기

만약에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애굽에서의 삶을 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가나안에서의 삶을 누리시겠습니까?

야곱은 죽어서라도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떨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요셉의 앞에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조상들과 같이 직접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죠. 하지만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몸소 체험했던 요셉은 어땠을까요?

 

야곱과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직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창세기 5025을 봅시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라고 합니다.

 

요셉은 22절을 보니까 110세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17세에 애굽으로 팔리죠.

그리고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110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면 요셉은 지금 애굽에서 약 93년 살았죠. 93년의 시간 중에서 총리가 되기 전

13년을 빼면 약 80년을 애굽에서 엘리트로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애굽 사람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유대인에 가깝습니까?

당연히 유대인보다는 애굽인에 더 가까웠을 겁니다. 왜냐면 인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죠.

생각도, 말투도, 생활방식등 모든 것이 애굽 생활에 맞춰져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가 죽음 앞에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애굽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 야곱과 같이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약속의 땅을 그리워합니다. 죽어서라도 약속의 땅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그가 죽어서라도, 그의 해골이라도 약속의 땅으로 가고자 하는

요셉의 열망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본론 3] - ? 크레센도, 강조하기

요셉의 이런 열망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122을 봅시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성경은 요셉의 이런 행동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여러 가지 사역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믿음은 야곱과 요셉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며,

하나님 나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믿음인줄 믿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하고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은 1949년에 되었는데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도대체 몇 년 동안

자신들의 땅에서 살지 못했던 것입니까?

 

수천 년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야 할 그 땅에서 살지 못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의 움직임이 있을 때 전 세계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은 본국으로 돌아와

나라의 독립에 힘을 썼습니다.

그들은 수천년 따로 흩어져서 살았지만, 한 가지 잊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을 살지만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인줄 믿습니다.

구별된 삶, 최종 목적지가 있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혹시 이중국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나라의 국적을 가지는 것이죠.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중국적자입니다.

 

우리는 각자 살아가는 세상의 국적이 있습니다. 우리로 예를 들어본다면 대한민국 국민이죠.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 나라에도 국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3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는 세상 나라의 국적보다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땅보다 하나님 나라를 더 생각하는 것이죠.

 

이는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와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과 요셉을 넘어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동일합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민을 오고 고센 땅에서 산지 수백 년이 지났습니다.

수백 년이 지났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출애굽의 여정속에서도 수백 년 전 요셉의 유언을 어떻게 기억했으며,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갈 생각을 했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에

자손 대대로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전달하고 상기시켰습니다.

 

길동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음세대들에게 물려줄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이십니까?

물질도 재산도 아닙니다. 신앙의 유산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다른 것보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물려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출애굽을 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유골은 그가 죽고 약 450년 후에 약속의 땅에 묻히게 됩니다.

여호수아 2432입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정복싸을 다 하고 난 후에야 요셉의 뼈가 세겜에 장사되고 요셉의 소망은 이뤄집니다.

 

요셉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요셉의 유골이 결국 가나안 땅에 돌아왔다.

요셉의 꿈 이야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이야기, 요셉의 지혜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은 이야기가 핵심이 아니라

그의 유골이 가나안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론 1]

사랑하는 길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고 적용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소망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지만 결코 이 땅에 소망을 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장차 가게 될 저 본향 곧 천국입니다.

 

여러분들은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아니면 저 가나안과 같은 저 천국에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풍요로움보다, 영원한 나라를 더 소망하며 살고 계십니까?

진짜 가야 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이 땅에서의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미친 듯이,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세상 것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관심사등은 철저하게 세속적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이보다 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땅을 살아가며 대충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에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4-7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비록 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있지만, 열심히 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거기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문화도 생활도 모든 것을 누리며 잘 살아야 한다.

자녀도 낳고, 번성하고 줄어들지마라! 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닌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야곱과 요셉이 죽어서라도 약속의 땅으로 가고 싶어 했던 것처럼,

바울이 세상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갈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소망을 두십시오.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십시오.

우리가 곧 찬송가 491장을 함께 큰 소리리 찬송을 할텐데요.

가사를 묵상하시면서 찬송하시면 더 좋겠습니다.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요셉이 내 해골을 메고 가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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