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룻의 신앙고백(룻기 두번째), 룻기 1장 15-18절

하엘빠 2023. 8. 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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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룻의 신앙고백 날짜 2023517
본문 룻기 115-18 비고 수요예배 설교

 

[서론 ] - 돌아오는 세명의 여인

지난 시간에 우리는 룻기의 서론을 살펴봤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약속의 땅을 떠난 가족을 봤죠.

다른곳이 아닌 모압땅으로 이주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오미와 이방 여인인 두 며느리뿐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처참한 실패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들에게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하나님께서 흉년이었던 그 땅에 다시 간섭하셨고 백성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듣고 그녀들은 원래 있어야 할 곳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난번에 함께 나눴던 말씀입니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그녀들은 또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까요?

베들레헴에 도착 전 큰 일이 하나 벌어집니다. 한 명의 여인은 본래 모압 땅으로 돌아갔고,

한 명의 여인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서론 ] - 사랑으로 돌려보내는 나오미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11, 12절을 보면

나오미는 그녀들을 향해 내 딸들아라고 부릅니다. 그녀들을 정말로 딸 같이 생각해서

같이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가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왜요? 베들레헴으로 가면 보나마나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당시 농경과 목축업이 주된 생활방식이기에 남성들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힘없는 여인 셋이 돌아간다면? 그녀들 앞에 너무나 힘든 삶이 펼치질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지금 그녀들을 돌려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녀들은 누구죠? 이방인들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모압 여인들이죠.

이 시대 배경이 사사기라 했죠? 이방 민족들에게 침략당하고 더군다나 에글론을 통해 18년이나

지배 받았습니다. 철전지 원수죠? 그런데 그 원수의 민족이 가족이 되어 돌아온다?

그 마을에서 반겨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나오미는 정말 엄마의 심정으로 그녀들을 딸이라 부르며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8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그동안 며느리들이 그녀를 잘 돌봐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나를 선대한 것 같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축복을 빌어줍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한다

 

근데 뭔가 이상하죠? 저는 본문을 보면서 뭔가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지금 인간적은 눈으로 봤을 때 선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두 며느리입니까? 아니요, 나오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며느리보다 나오미가 훨씬 불쌍합니다.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었습니다.

늙어서 일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은 더더욱 생각도 못하죠. 누구보다 선대,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나오미인데, 오히려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에 등장하는 나오미를 통해 진짜 헤세드” “아가페사랑을 봤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준 나오미인데, 며느리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본론 1 ] - 오르바의 선택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말에 두 며느리는 웁니다. 울면서 우리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다시 한번 돌아가라고 망합니다. 그리고서는 형사취수제를 말하죠.

형사취수제는 구약의 율법으로서 형이 죽으면 동생이 그 가정의 가장이 되어서

그 가정의 대를 이어주는겁니다.

 

이제와서 다른 아들을 낳아서 그녀들의 남편이 되게 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설령 내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다해도 그들이 자라기까지 어찌 기다리겠느냐? 라고 하죠.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나오미의 말에 두 여인은 함께 울었지만 선택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먼저 오르바는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1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뒤돌아섭니다. 뒤돌아섰다는 말은 나오미의 말에

순종해서 자신의 고향 모압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오르바를 향해서 비난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고 말입니다.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르바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나를 선대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오르바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오미를 섬겼고, 나오미의 간곡한

부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가 모압으로 돌아감으로 인해 언약의 날개 아래 들어오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반면에 룻은 어떨까요?

오르바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선택을 했다면 룻은 완전히 비상식적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오히려 룻이 더 이상해 보입니다.

 

[본론 2] - 룻의 제대로 된 신앙고백

모압으로 돌아간 오르바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룻은 분명히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아들들이 모압에서 만나서 결혼한 이방여인들이었죠.

그런데 이 이방여인이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말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입니다.

 

15절에서 오르바가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간 것처럼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룻의 반응이 바로 16절입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지금 시어머니 나오미 앞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펼칩니다.

나오미 앞에서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과 동일하죠.

 

룻이 지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신의 친척과 고향과 아비의 집, 평생 누려왔던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더욱이 놀라운 것은 자신의 민족들이 섬겨왔던 모압의 신들도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분명하게 확신하건데 나오미를 통해서 여호와를 알게 되었고, 신앙의 전수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하며 자연스레 여호와 신앙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전달받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십 년간 함께 거주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겠죠.

 

하지만! 똑같이 10년 동안 함께 살았고 삶으로 함께 배웠던 그녀들이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한 명은 그들의 신들에게로 돌아갔고, 한 명은 더 굳건한 신앙을 붙잡았습니다. 결단이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의 결단이죠!

 

[강조시작]

여러분들은 이런 신앙의 결단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때로는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굳건한 신앙을 붙들어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한 발, 교회에 한 발 걸쳐놓고 살 수 없습니다. 양다리를 걸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상을 섬기며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과는

구별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룻은 모압의 신들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 언약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고백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본론 3] 룻의 신앙고백2

14절 하반절을 보면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착 달라붙다, 거머리 같이 붙다. 결합하다는 의미입니다.

 

룻은 지금 자신과 나오미를 하나로 묶어버렸습니다. 마치 실과 바늘처럼요!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굳건한 그녀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6절과 17절을 보면 룻은 반복해서 나와 어머니, 어머니와 나를 말합니다.

다시 한번 16절을 읽어볼까요?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것은 그냥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겠다는 정도의 각오가 아닙니다.

룻은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맡겨버린 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룻,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단지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룻의 인간적인 효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섬겼던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룻의 엄청난 신앙의 결단, 신앙의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7절에서는 더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의 비장한 결단입니다. 나는 죽어서도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겁니다.

절대로 이별할 수 없다! 어머니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흔히들 쓰는 말 중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표현이 있죠.

그런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팔레스타인 매장 풍습이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동굴에 넣고 살이 다 녹을 때까지 있다가 살이 다 녹으면 그 뼈를 거두어 항아리에 담습니다. 자신의 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뼈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죽은 후에도 뼈와 뼈로 다시 만나는 매장 풍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조상들과 함께 누웠다라고 표현을 하는겁니다.

 

이처럼 룻은 죽어서라도 뼈와 뼈로 만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라고 분명히 룻은 고백했기 때문에

만약 나오미가 먼저 죽더라도 룻은 계속해서 거기에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고백처럼 모압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여길 것이고,

죽은 후에는 모압이 아닌 이스라엘에 묻힐 것이라는 뜻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방 여인이 이런 고백을 한다니 믿기십니까?

그들은 택함 받은 백성들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한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싫어하는, 가증히 여기는 이방 민족입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지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룻의 가슴에는 신앙의 불, 여호와 신앙의 불이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17절을 보면 룻은 자신의 생명을 걸어버립니다.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어버리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단합니다.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룻의 이 고백을 통해 이방 여인이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 들어오게 되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길동교회의 성도 여러분

본문에 등장하는 룻처럼 오직 여호와 신앙을 굳게 붙잡길 소망합니다.

 

언젠가 사라실 세상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

또한 나약한 나 자신을 붙잡아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녀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죠.

 

이런 룻을 보고 이제 나오미는 권면하지 않습니다. 18절을 보니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라고 나옵니다. 그녀의 굳은 결심, 확고한 신앙을 본것이죠.

이것을 기억하며 룻의 고백처럼 오직 하나님만 붙드시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결론 1]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셨습니까?

이방 여인인 룻은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여호와 신앙을 굳게 고백했고 붙잡았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 굳건한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한분에게 이런 고백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평탄하게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참 나약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고

그에 따라서 더 굳건히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를 통해 신앙의 자리에서 떠났습니다.

편한 것에 길들여지고 오히려 신앙이 진보한 것이 아닌 퇴보했습니다.

성장한 것이 아닌 후퇴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기에 굳건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룻과 같은 고백을 해야 하고,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나왔습니다. 이 장소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입니다.

가나안의 우상들, 그리스의 우상들, 로마 황제의 신격화가 이루어져 있는 그 장소에서

베드로는 굳건한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길동교회의 모든 성도 여러분

타성에 젖어 매너리즘에 빠져있는게 아니라 우리는 룻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룻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수영로교회의 이규현 목사님은 룻의 이 고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룻이 이 좁은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룻의 심장 가운데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택에는 십자가의 도가 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심장 가운데 여호와를 향한 굳건한 신앙고백을 새기며

룻과 같이 늘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오직 믿음으로 주기도문

 

10. 룻의 신앙고백 (202305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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