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룻기 첫번째), 룻기 1장 1-10절

하엘빠 2023. 8. 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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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짜 2023426
본문 룻기 11-10 비고 수요예배 설교

 

[서론 ] - 나긋나긋하게 천천히

룻기는 4장으로 이뤄진 짧은 책입니다. 그런데 룻기가 주는 시대적 의미와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네델란드의 한 신학자는 룻기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사기와 사무엘상하라는 딱딱한 조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진주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룻기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는 흔히 영적인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이런 암울한 시기에 한 가정의 이야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놀랍게 펼쳐집니다.

 

슬픔이 가득한 여인과 이방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또한 이방 여인이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 들어오고 결국 그녀의 후손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놀라운 역사를 담고 있는 성경이 바로 룻기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룻기이기에 오늘 한 번에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몇 번에 걸쳐서 룻기를 살펴보며, 숨겨진 보화들을 함께 발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서론격으로 11절에서 5절까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

먼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시대적 배경이 사사시대인 것을 1절에서 볼 수 있죠.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은 어떤 땅입니까? 출애굽기 3장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풍족한 삶, 젖과 꿀이 흘러야 할 그 땅에 지금 흉년이 들었습니다.

기근과 흉년은 보통 성경에서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그 땅에 지금 흉년이 들었다는 말은

곧 그들의 영적상태가 엉망이라는 것이죠.

 

물론 모든 흉년을 부정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흉년으로 인해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음식을 사러 갔다가 요셉을 만난 것처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흉년은 하나님의 심판, 부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면 사사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사사기 2125절을 보니 이렇게 나와있죠.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악순환 싸이클이 계속 반복되었음을 볼 수 있죠.

그래서 그들의 영적 상태가 완전히 메말라버렸다는 표현,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다는 표현이 바로 흉년입니다.

 

그 다음에 바로 지명이 나오죠. 바로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그 지역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지역입니다.

 

지금 본문은 구약이지만 신약을 넘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베들레헴이 지닌 의미를

알고 있죠. 베들레헴에서 누가 태어나셨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도 그 예언이 선포됩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리고 베들레헴 그 이름의 뜻이 너무 중요합니다.

베들레헴은 합성어입니다. 집이라는 단어와 빵()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 합치면 곧 빵집입니다. 빵집에는 무엇이 가득해야 할까요? 빵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1절을 보니 가득해야 할 빵집에 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채워주셔야

할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지 않고 흉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가운데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것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시대적으로 혼탁한 영적 상황입니다.

 

진짜 왕이신 하나님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대신 우상이 가득하고 죄악이 가득합니다.

먹고 즐기며 쾌락을 즐기기에 바쁩니다. 그러니 그 땅 가운데 심판하시고, 징계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론 1 ] - 개인의 적용

그 땅 가운데 흉년이 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죠.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삶은 영적으로 풍년이십니까? 흉년이십니까? 내 가정은 풍년? 흉년? 진단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는 영적 생활이 많이 무너져버렸습니다.

3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무너진 상태였는데 코로나를 통해서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흉년의 때 혹은 어려운 시기에 교회를 떠납니다.

신앙 공동체를 떠납니다. 신앙을 저버리기도 하고 믿음의 자리를 떠납니다.

그래서 오늘날 어떤 성도들이 많습니까? ‘가나안 성도거꾸로 안나가!

 

안 나가는 겁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성도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아서 교회를 안 갑니다.

지금 본문에 나오는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이 흉년의 때에 약속의 땅을 떠나버립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서 결코 그 땅을 버리거나

떠나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그 땅을 떠나버렸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상처받고,

밉고 슬프다 하더라도 결코 믿음의 자리, 신앙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나오미와 그 가정은 지금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모압이 주는 의미도 중요합니다.

 

모압은 창세기에서 롯과 그의 딸들이 도망하여 동굴에 있을 때, 그의 딸들이 롯을 술에 취하게

해서 관계를 맺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 후손들이 모압과 암몬이죠.

 

그리고 지금 시대배경이 사사시대입니다. 사사기 3장에서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을

무려 18년 동안 괴롭힙니다. 백성들은 비참하게 지내다가 에훗을 통해 평온을 얻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압으로 간다? 이거 굉장히 심각한거죠.

 

그리고 모압 족속은 우상숭배가 심각합니다. 그들이 섬겼던 신은 그모스입니다.

사람들은 그모스를 숭배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여서 바쳤죠. 인신제사죠. 악랄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3장에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오미 가정은 바로 그 모압으로 넘어갑니다.

1절 하반절을 보니 거류하였는데라고 나오죠?

그리고 2절 하반절에서는 거기 살더니라고 나옵니다. 완전히 정착해버린것이죠.

 

이것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좋아서 처음에는 거류하러 갔다가, 결국 거기에 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세상이 워낙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롯을 보십시오. 그가 보기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 같아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곳에 들어갔고, 모진 고통을 당했죠.

 

내가 힘들어서 쉰다? 내가 상처받아서 믿음의 자리를 잠시 떠난다? 있을 수 없습니다.

어찌됐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개인의 영적생활이 흉년이 아니라 풍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2] - 교회와 구역, 전도회, 순의 적용

앞서 베들레헴은 빵집이라고 했습니다. 빵집에 빵이 없으면 누구도 그 빵집을 가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그 빵집에 빵이 맛이 없다면 가지 않겠죠.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교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구약의 이스라엘은 곧 교회의 모형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미리 예표합니다.

교회에 빵이 없다는 말은 곧 교회에 말씀이 없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없다는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런데 너무 안타깝게도

강단에서 죄와 회개, 십자가, 믿음, 회심에 대한 말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은혜!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는 너무 감사하고 좋죠!

근데 은혜가 있으려면 반드시 죄 사함과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죄를 알아야 하고,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지쳤다고 교회에서 이런 복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혹시 텍사스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강단에서 죄와 회개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전하지 않아요.

그저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 긍정의 힘을 전달합니다. 좋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죄와 회개, 십자가 이야기가 없으면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강단에서 말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귀에 듣기 좋고, 좋은 소리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탕을 계속 먹으면 이가 썩는 것처럼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줄 믿습니다.

말씀뿐 아니라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함께 넘쳐나는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요즘 대심방이 계속 진행 중에 있죠. 많은 성도가 가정을 오픈하여 심방을 받습니다.

심방받는 각 가정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점점 살아있고 회복되는 것 같아 너무너무 좋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에 감당치 못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모든 예배 때마다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구역모임과 전도회 모임, 순 모임때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점점 회복되며,

비로소 부흥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놓은

사람들이 한명 두명씩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바로 부흥의 출발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그 고백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우리 길동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본론 3] 믿음의 자리를 떠난 사람들의 결과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은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간에

베들레헴이 아닌 모압에서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 살았나요?

 

그렇지 않죠. 가족을 이끌고 이방 땅으로 갔던 엘리멜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죽습니다.

그래서 3절을 보니 나오미와 그 두 아들만 남았죠. 가장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더군다나 고대 사회는 여성이 지금처럼 자유롭게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합니다. 분명히 신명기와 여호수아에 기록되어 있죠.

너희는 성민이기에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라, 이방인들을 사위로 며느리로 맞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가나안 이방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죠.

 

그런데 이들은 모압으로 건너가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주한지

약 십년쯤에 두 아들 역시 죽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사람은 나오미와 두 며느리뿐입니다.

 

이 상황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엘리멜렉 가정의 모압 땅 이주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두 며느리는 자녀를 낳지 못한 상황에서 남편들을 잃어버립니다.

 

이제 남편을 잃은 3명의 여인만 그 땅에 남아 있습니다. 집안이 완전히 풍비박산 나버렸습니다.가세가 완전히 기울어버렸습니다. 처음 베들레헴을 떠날때의 모습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채움을 위해서 갔지만, 오히려 더 비움을 맞이했죠.

 

때로는 신앙의 자리를 떠난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오미가 나를 나오미가 아닌 마라라 부르라는 것 아닐까요?

 

지금 11-5절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론 1]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지내는

곳이기에 때로는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흉년과도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나오미 가정에 베들레헴을 떠났을 때, 남아 있는 베들레헴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흉년이 든 그 땅에 남아서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교회, 모임, 은혜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믿음의 자리, 은혜의 자리를 더 굳건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결론 2]

둘째, 교회가 말씀과 기도, 은혜로 충만하도록 함께 힘써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수 있도록 날마다 강단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세우신 설교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장해 나갑니다.

 

빵집에 빵이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결론 3] - 회복의 소식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복된 회복의 소식을 전달하십시오.

나오미 가정은 이방 땅에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풍비박산 나고

세 명의 여인만 덩그러이 남았습니다. 이 세 명의 여인이 어떻게 앞날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때! 놀라운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함께 6절을 읽겠습니다.

 

룻기 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지금 나오미에게 복된 소식이 들렸습니다. 흉년이었던 그 땅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쁘고 복된 소식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십시오.

 

우리 길동교회가 다시 회복이 되고 있다. 우리 길동교회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우리 길동교회에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다시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점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길동교회로 오라고 전달해주십시오.

 

나오미 가정이 앞날이 막막할 때 은혜의 소식을 듣고 돌아온 것처럼

우리 가운데 아픔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지금 회복시켜주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이전보다 더 회복되며, 더 은혜가 충만하며, 더 성령의 충만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길동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이 은혜의 자리, 복된 소식이 있는 자리를 함께 소개하며

함께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찬송가 301-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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