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은혜의 자리로(룻기 다섯번째), 룻기 2장 22-23절

하엘빠 2023. 9. 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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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의 자리로 날짜 202396
본문 룻기 222-23 비고 수요예배 설교

 

[서론 ] - 주제제기

미국의 한 마약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삶에 어려움으로 인해 술과 마약을 하며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런데 지역 기자가 그를 눈여겨봤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그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유투브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매료된 것입니다. 결국 그 노숙자이자 마약중독자는

티비쇼에도 등장하고 수많은 광고를 찍게 되었습니다. 라디오 진행은 물론 영화와 다큐멘터리에서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를 만들어 예전에 그와 같은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노숙자는 한 기자에 의해 그의 인생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만남을 통해 인생 역전이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일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일어나지만 우리가 함께 살펴본 성경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본문을 보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 - 룻에게 베푼 보아스의 은혜

룻은 보아스를 모릅니다. 보아스 역시 소문을 통해 룻에 대해서 들었을뿐 룻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들을 베풉니다.

 

보아스는 2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력한 자입니다. 영향력 있고 부유한 사람이죠.

반면 룻은 보잘 것 없는 이방 여인입니다. 자신이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뉴스를 통해서 값없이 좋은 것들을 베풀어주는 기사들을 봅니다.

예를 들면 평생 파지를 주운 어르신이 모대학에 수억원을 기부했습니다. 또 해마다 찾아오는

명절이 되면 익명의 기부자들이 굉장한 금액을 기부하고 불우이웃돕기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사들을 보며 그 사람을 칭찬하기도 하며 흐뭇해 하기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보아스는 그것을 뛰어넘는 은혜를 룻에게 베풀고 있습니다.

그런 기사들과는 한 차원이 다른 나눔,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본론 1 ] -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다

보아스는 룻을 보고 그녀에게 3가지를 허락해주었습니다.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허락했고, 안전을 지켜주었고, 마실 물까지 허락했습니다.

사실 이정도면 보아스는 할 만큼 했습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방여인에게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고 안전까지 보장해줬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요? 하지만 보아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서두를 보니 식사할때에라고 나옵니다. 이는 점심시간이죠.

다른 일군들이 식사를 하러 가도 아마도 룻은 남아서 계속 이삭줍기를 했을겁니다.

첫째는 먹을 것이 없죠. 그러니 주우러 왔지 않습니까?

둘째, 조금이라도 더 주워야 나오미와 함께 먹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룻이라면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요? 더 말할 것도 없이 배고픔입니다.

아침부터 와서 열심히 일합니다. 식사 시간에 배가 고픕니다. 먹을 것은 없습니다.

식사하며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음식에서 나는 냄새등 힘들지 않을까요?

지금 룻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배고픔입니다.

 

보아스는 밭의 주인이기에 주인과 종들이 먹는 음식은 달랐을 겁니다.

주인이 주식에 곁들여 먹는 음식들은 분명히 다른 일군들과 차이가 나지 않았을까요?

 

또한 밭의 주인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먹는 음식 뿐 아니라 앉아서 먹는 자리도

구별되었으리라 보여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아스는 모압 출신은 룻을 자기가 먹는 식탁으로 초대합니다.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도록 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먹는 떡을 나눠주고,

거기에 소스까지 찍어먹게 합니다. 덧붙여 복은 곡식까지 배부르게 먹도록 줍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자 미천한 자에 속한 인물인데다가 당시 유대인들은 모압인들을 경멸했죠.

율법에 따라서도 싫어했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이라는 인식이 있어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룻은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밭의 주인인 보아스와 한 식탁에 앉아서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보아스 곁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종들중에서도 직급이 높거나, 신뢰를 받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주인의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도 차별된 것이 아닌 보아스가 먹는것과 동일한 음식을 먹습니다.

차별없이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지금 보아스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긍휼함으로 돈 없이 값없이 룻에게 와서 먹으라고

초청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놀랍습니다.

당시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서로간 동급이 된다는 표현입니다.

 

흔히들 갑과 을이라고 말하죠. 보아스는 갑이고 룻은 을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그것을 깨트렸습니다. 하층민으로, 거지로 외면하지 않고

자신과 동등하게 여기며, 한 인격체로서 룻을 돌봐준 것입니다.

 

이방 여인 룻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순간에 신분이 달라진 겁니다.

 

룻과 보아스는 그들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도 이런 상황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향으로 신기하게 펼쳐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만한 조금의 조건도,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들 아웅다웅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전혀 자격 없는 우리에게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는 선물을 베풀어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아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룻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신분이 격상된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죄에 종노릇 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 815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쉽게 말해서 은혜로 말미암아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아스의 식탁에 초대된 룻은 보아스와 함께 먹고 마시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와 룻을 베들레헴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점차 또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왔고,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갔습니다.

보아스를 만나서 대화를 나눴고, 보아스와 같은 식탁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이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본론 2] - 비움에서 채움으로 나가다.

식사 자리에서 은혜를 베푼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비움에서 채움의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룻기 215-16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보아스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룻을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끔 명령합니다.

밭 모퉁이나 구석이 아닌 곡식 단 사이는 어떤 곳입니까? 흔히 말하는 황금어장입니다.

더군다나 보아스는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서 버림으로 룻을 줍게 하라고 합니다.

 

율법에 근거해서 떨어진 것들은 그대로 둬야 하지만, 일부러 곡식단에서 뽑다니요?

보아스는 룻을 엄청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룻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그녀가 알지 못하게 최선의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까지 주워서 모았던 것은 그 양이 얼마나 될까요? 17절을 보겠습니다.

 

룻기 217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룻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를 보니 보리가 한 에바입니다.

여기서 에바는 바구니라는 뜻입니다. 이 바구니는 밀가루, 곡식등 고체의 양을 측정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러니 한 바구니를 리터로 환산하면 약 11kg 정도가 됩니다.

 

당시 식사량을 봤을 때 11kg4인 가족이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룻은 2명이니, 2달을 먹을 수 있겠죠?

 

룻은 지금 하루를 먹고 살기 위해서 밭으로 나왔지만, 하루가 아니라 2달정도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얻게 된겁니다. 이것은 이삭줍기로 모을 수 없는 양을 가지고 온겁니다.

 

그러니 룻으로부터 자조지동을 들은 나오미는 놀라운 반응을 보이며 축복의 말을 합니다.

룻기 220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그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보아스임을 깨닫고 그를 축복합니다.

20절에 등장하는 나오미의 말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문장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하며 뜻은 구속자입니다.

고엘 제도를 통해 이스라엘 각 지파는 자신들이 분배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각 혈족을 유지하며, 또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억울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정당한 보상을 해주게 되었다.

 

나오미의 말 속에서 유력한 자, 곧 보아스가 어떤 중요한 일을 할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큰 개념으로 성경 전체에 적용을 해서 살펴보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하고 있는 백성들을 어려움에서 구해주셨고, 장차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도 이스라엘을 건져 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구속의 사역, 즉 고엘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택함받은 백성들의 구속자, 고엘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나오미는 지금 보아스에게 기업을 무를 자이며 자신들의 생명을 건질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룻기를 소개할 때 사사기와 사무엘상하라는 딱딱한 조개 껍질 속에 들어있는 진주 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듬뿍 담긴 성경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룻기를 바라볼 때 단순하게 나오미, 보아스, 룻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오미와 룻은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나오미의 고백은 이러했습니다.

 

룻기 121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텅빔으로 돌아온 그녀들이지만 이제는 채움이 있습니다. 그냥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넘치도록 풍족하게 채워집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가문을 잇게 될 사람까지 만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저는 본문에서 계속해서 간섭하시고 역사하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요한복음 1010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만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하게 많은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구원만 허락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따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간단하게 2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결론 1] 은혜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자녀들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시고자 하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에 종노릇 하던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의 자리로, 양자로 입양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시길 축복합니다.

 

[결론 2]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두명의 여인은 빈털터리였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셨고,

그들이 생각했던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백성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동일하게 여러분들의 삶에서 풍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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