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수요 및 금요기도회 설교 원고

인생의 목적, 이사야 43장 7절

하엘빠 2023. 12. 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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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인생의 목적 (2023122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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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목적 날짜 20231227
본문 이사야 437 비고 수요예배 설교

 

저는 죽음에 대해서 자주 묵상을 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우울증에 걸렸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죽음을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될

본향은 죽어야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1년동안 장례를 26번 인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장례식장을 많이 방문했으며, 그에 따라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욱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죠.

전도서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그때 받았던 감정들과 묵상의 내용들을 정리해놓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많은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신앙고백서나 대소요리문답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냐면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 때 신도게요와 대소요리문답을 알고

그대로 따를 것에 대한 서약을 하는 선서를 하기 때문이죠.

 

소요리문답 1문은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답입니다.

1문은 사람 존재의 목적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데는 그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마이크가 있습니다. 이 마이크의 목적은 소리를 잘 전달하는데 있죠.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서 여러분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봤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이 마이크가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들고 때리는 용도인지, 효자손처럼 등을 긁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용도를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을 만든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면 됩니다. 왜 이것을 만들었습니까?

이것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께로 가면 우리 사람의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방황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든 사람이든 모두가 방황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 자체에 목적과 의미를 모르니 그저 방황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모르니 타인에게 묻습니다.

점집에 가서 묻고, 타로를 통해서 묻기도 합니다.

 

요즘 과학이 상당히 발달했죠. 달의 뒷면을 촬영하기도 하고,

얼마전 에는 보이져 1호 우주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로봇은 화성에 착륙해서 실시간 사진과 소리들을 전송해옵니다.

저도 재미있게 보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 하더라도

사람의 존재 목적에 대한 그 답을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로 가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스스로 존재의 목적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요리문답 1문은 그 답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화면을 보고 함께 읽어볼까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에게 다른 목적은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만, 그중에 최고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목적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죠.

 

학생들은 공부, 젊은이들은 취업과 결혼, 어른들은 일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최고의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겁니다.

 

쉽게 말해 여러분들을 지금 그 장소에 두신

그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께 속한 사람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길동교회의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여기서 우리가 오해를 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조금 부족해서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을 해서 하나님을 더 아름답게 하거나, 하나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이 필요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스스로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 나타내는게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인 기도를 통해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응답해주실 하나님을 믿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나타내고 증거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고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구나! 라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 가운데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 행복이 다른데

있는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롭고 슬프더라도

나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행복합니다라고 고백을 하는겁니다.

 

하지만 우리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들이 많지는 않아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 때, 내게 필요한 것들이나,

내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을 때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셔서 기뻐하고 감사해서는 안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고백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감사해야 합니다.

내게 무엇을 주셔서가 아니라, 구원해주신 그 자체만으로 감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인데,

우리는 너무 어리석어 하나님께서 가져다주시는 선물만 보이는 겁니다.

 

어린아이 같은 신앙인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선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런 존재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얼마전에 구약 파노라마 양육을 마쳤습니다.

포로시대 강의를 준비하며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사랑하는 내 백성아 돌아와라, 세상과 죄 가운데 있지 말고 돌아와라!

나는 너희를 너무나 사랑한단다! 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외면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실 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그들은 두 가지 악을 행합니다. 그들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웅덩이를 팠습니다.

근데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외면하니 그들 가운데 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생수를 얻지 못하니까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팝니다.

근데 그게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입니다.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히 삽니다.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엄청 바쁘고

열심히 그리고 상당히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저는 지금 그게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헛것을 쫓으며 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들 터진 웅덩이를 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더욱이 자신들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열심히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뭐라고 합니까? “허무한 인생이다라고 말하는겁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삶의 목적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생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기쁨과 즐거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이유를 찾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왜 사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대체 왜 사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삶의 있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우리 삶의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큰 상급이고 방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다고 투정합니다.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께서 방패고 상급이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내게 부유함을 주시고, 자식을 주시고,

모든 것을 순탄하게 해주신다고 오해 하면 안됩니다.

 

내게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을 명확히 기억하시고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십시오.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시고

가정에서는 가정의 일을 열심히 하시면서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 정필도 목사님께서 기도할때 사용하셨다던 기도 봉....

사진만 봐도 얼마나 기도에 힘쓰셨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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