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새벽설교 원고

참된 교제, 요한일서 1장 1-4절

하엘빠 2023. 9. 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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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교제 날짜 20221219
본문 요한일서 11-4 비고 새벽예배 설교

주기도문 찬송가 본문읽고 설교 - 합심기도

 

오늘부터 요한일서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요한일서는 사도요한이 그의 인생의 끝자락에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짧은 5장까지의 말씀중에서 핵심은 교제사랑입니다.

 

첫 번째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인들끼리 어떻게 아름다운 교제를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1절부터 4절까지를 살펴보면서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사도요한이 기록한 서신이기에 요한복음과 연관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곧 말씀이며 생명인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냥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과 연관됩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곧 진리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한 요한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에서 더 중요한 사실은 저자 요한이 이것을 이미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하죠? 증인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1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2절에서 요한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생명되심을 강조합니다.

2절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은 창세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이미 존재하고 계셨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이미 창세전에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자이시지만 성부 하나님과

영광과 권능등 모든 것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육신되심을 말합니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된지라라는 문장이 성육신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기에 요한이 1절에서 말한는것처럼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2절 서두에서 한번 언급하고, 2절 끝에서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한이 지금 이렇게 몇 번씩이나 강조하는 것은 당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증인으로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렇게 요한이 직접 경험한 것을 말하고 전파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사귐을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경험한 제자들과 후에 교회의 성도들간의

사귐을 위해서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여기서 전하다는 단어는 그저 사실만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보고하다, 브리핑하다는 의미입니다. 굉장히 상세하게 성도들에게 전달을 하는 요한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귐 교제는 단지 제자들과 성도들간의 교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와 성자 예수님과 함께 누리기 위함입니다.

 

사귐을 코이노니아라고 말합니다. 이는 교제를 뜻하는데, 그저 일면식만 있는 교제가 아닌, 영적이며 물질적인 나눔을 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성도들과 지금 이런 관계를 만들고, 이런 사귐을 가지고 싶어서 본 서신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귐 자체가 곧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누림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없는데 어찌 성도들간의 관계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길동교회 위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구로, 구역으로, 여러 모임등으로 함께 교제를 나누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진정한 교제가, 구역예배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으로 모여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우리 길동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예수님의 증인된 것, 우리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교제를 해야 되는 것,

이 사실을 전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라 말합니다.

 

요한 자신만의 기쁨이 아닌, 온 교회 공동체의 기쁨을 말하죠.

그래서 1절부터 계속해서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라고 끊임없이 언급을 합니다.

14절 말씀이 본 서신의 기록목적입니다.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첫 번째는 우리의 모임 가운데 참된 교제와 기쁨은 우리들만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 예수님께서 함께 하셔야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만약 진리가 빠지고, 생명이 빠진 교제는 다른 세상적인 모임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모든 모임 가운데, 예배와 구역예배와, 전도회와, 제직회등 각종 모임들 가운데 반드시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1절과 3절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가 먼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보고 듣고 경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직접 경험할 순 없죠.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과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며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하고, 세상에 나가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십시오.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며, 언제나 모일 때 십자가를 붙드는

우리 길동의 모든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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