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사 설교/새벽설교 원고

사무엘상 22장 22-23절, 탐욕을 버리고 연약한 자를 위로하라

하엘빠 2023. 9.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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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탐욕을 버리고
연약한 자를 위로하라
날짜 2023424
본문 사무엘상 2222-23 비고 새벽 예배 설교

 

[본문의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의 배경은 다윗을 도와주었던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과 성읍의 사람들을 죽인 사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생존해 다윗에게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를 감싸주고 그를 지켜주겠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입니다. 살육을 벌인 사울과 그와 대조되어 감싸주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가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내용관찰]

우리 함께 내용관찰 1번을 보겠습니다.

사울은 도엑에게 무슨 일을 지시합니까?”

 

우리가 앞선 본문에서 살펴본것처럼 도엑은 사울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아히멜렉을 죽이라고 그의 호위병들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호위병들은 거절하죠. 그래서 사울은 도엑에게 가서 죽이라 합니다. 그때 도엑은 가서 아히멜렉뿐 아니라 85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니 놉땅에 있는 남녀와 아이들, 갓난아이들과 짐승들까지 죽였습니다.,

 

도엑은 에돔 사람이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가서 잔인한 살육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종교의 중심지에서 그는 잔인한 짓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반대되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아비아달은 생존하여 다윗에게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사건들을 보고하죠. 그 후 다윗의

반응이 바로 내용관찰 2번입니다.

 

2. 다윗은 죽음의 현장에서 도망한 아비아달에게 무엇을 약속합니까?

 

아비아달을 맞은 다윗은 그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를 맞이하며 그에게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23절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말하며 아비아달을 보호합니다. 아비아달 입장에서는 너무 큰 보호의 울타리가 되죠.

부모와 형제를 잃은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왜 다윗은 아비아달을

이렇게 보호하고 함께 행동하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3번 연구와 묵상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연구와 묵상]

3. 다윗은 왜 아바아달을 영접하고 그에게 안전한 보호를 약속합니까?

 

22절을 보니 다윗은 아히엘렉과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아비아달의 집에 내린 불행은 자신의 탓이라고 돌렸습니다. 왜냐면 다윗은 힘들 때 사울을 피해

그를 찾아갔고 그에게서 양식과 무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시 다윗은 도엑을 봤습니다. 분명히 도엑이 사울에게 알려주리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당시 다윗은 도피하는 중이라 어떻게 할 수 없었죠. 그 결과로 인해 아히멜렉과 많은 사람들이 죽은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탓이라고 아비아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역시 도망자의 신세이며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책임감을 느끼고 아비아달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속에서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 용맹스러운 다윗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한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실 수 있습니까?

이제 4번 느낀점으로 가보겠습니다.

[느낀점]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이 오히려 아비아달의 안전을 약속하는 것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여기에서 우리 스스로가 아비아달이 되어봅시다. 예전에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도망했을 때 아비아달은 그를 보지 않았을까요? 용맹한 하나님의 군사 다윗이었는데 당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도망자 다윗을 봤었겠죠. 당시 양식도 없고 무기도 없는 아주 비참한 도망자 다윗의 모습을 봤을 겁니다. 그리고 또 사울을 두려워하여 가드 왕 아기스로 도망친것까지 본 것이죠.

 

원래 아비아달의 기억속에 다윗은 약한 자, 도망자, 능력없는자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혔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다윗을 찾아가니, 예전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약함 대신 강함이 있고, 두려움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늠름한 모습이 있습니다. 17장에서 골리앗과 싸웠던 그 용사 다윗이 이제 자신의 앞에 있는것입니다. 그러니 아비아달은 어떻겠어요?

 

어ᄍᅠᆯ 수 없이 다윗을 찾아왔던 아비아달이지만 이제 완전한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당시 다윗은 약했지만 이제는 따르는 사람들도 많고 한 무리의 참된 리더가 되었죠. 그러니 제가 아비아달이라면 더 없이 든든하고 더 없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아비아달을 품고 감싸주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성도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존재입니다. 남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안고

감싸주며 공감하며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여기서 5번 적용으로 가보겠습니다.

5. 내 부족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저는 본문을 보며 아브라함을 생각했습니다. 12장에서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지만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애굽왕 바로에게 거짓말을 하죠.

자신의 대답으로 인해 여러사람들이 위험에 처합니다.

사라가 바로에게 뺐길뻔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역시 큰 재앙을 당하죠. 그래서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대체 나한테 왜 그랬냐? 라고 따집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한번 더 등장하죠.

 

창세기 20장에서 이번엔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간것입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사라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꿈으로 그랄 왕을 혼내셨죠. 그 결과 다시 한번

사라를 뺏길뻔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라도, 바로도, 그랄왕도 아브라함의 두려움과 연약함 때문에 각각 위기에 처했던것이죠. 때때로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나의 연약함 때문에, 부족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게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가.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5-1 탐욕을 버리고 상처 입고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겠습니까?

 

먼저 사울을 생각해봅시다. 사울이 지금 다윗과 제사장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그의 욕심, 탐욕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반면 다윗은 지금 사랑과 희생, 포용의 마음으로 아비아달을 감싸주고 있죠.

또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시고 맞으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사랑하는 길동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속한 구역과 전도회, 순 모임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감싸주십시오. 그저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닌, 다윗처럼 직접 포용하고

지켜주며 위로해주십시오. 그럴 때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위로하고 감싸주는 사랑의 원자탄 길동의 성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을 보며 첫 번째 기도제목을 이렇게 정했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첫째, 탐욕대신 사랑이 가득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 연약한 자에게 안식처가 되고, 고통받는 자에게 위로가 되며, 낙심한 자에게 소망이 되게 하소서

셋째, 담임 목사님이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고 개인 기도제목으로 자유롭게 기도하시다가 돌아가겠습니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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